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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지성인 되기

여전히 저는 지성인을 표방합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半) 지성인이라도요.
이십 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무슨 연유였는지 이른바 '지성인'이 되는 것을 지향했던 적이 있다.
플래너에도 '올해 목표: 지성인 되기' 비스무레하게 적어놓고
독서, 글쓰기, 토론 등 여러 가지 계획으로
빼곡히 채우기도 했었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지성인의 모습은 이랬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일들을 꿰차고 있어
어느 때고 누가 물어보면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줄 알며,
혹여 아무도 물어보지 않더라도
뚜렷한 가치관과 유연한 사고에 기반하여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는 사람
지금 다시 써봐도,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을 죽을 때까지 추구할 인생의
목표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나이가 좀 들어보니
주위 모든 일에 다 신경 쓰기에는
인생의 가용 시간이 너무 적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뉴스를 찾아 읽고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찾아가며
내 의견을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움을 깨달은 것이다.
더불어 명쾌하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건 잘못되었어! 라고 마구 비판했던 일도
나중에는 더 좋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했고
너무 잘했다고 칭찬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일일 수 있음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여전히 지성인이 되고픈 생각은 품고 있으되,
세상 모든 이슈를 알고자 하는 욕망에서는
거리를 두고 있다.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을
조금은 천천히, 더 까다롭게 고르게 되었다.
한참 뜨거운 정의기억연대 이슈도,
한명숙 전 총리 재수사도,
재난지원금의 실질적인 경제부양 효과나
포스트 코로나19의 세계도.
꼭 알아야만 할까.
꼭 판단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으로 내 나름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밀린 회사일 따라잡기에 급급한
애 둘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꿰뚫고 있는 지성인 되기란 사치성 유희다.
이십 대 때는 그렇게 쉬웠던, 누군가에게 이것이 옳다 그르다 단정하며 말하는 것도
점점 자신이 없어져간다. 수많은 오류를 경험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성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도 너무 서글픈 일이니,
내가 생각하는 지성인의 기준을 바꾸는 수밖에.
이를테면, 위의 정의에서 처음 절반을 날리고 아래만 남기는 거다.
혹여 아무도 물어보지 않더라도
뚜렷한 가치관과 유연한 사고에 기반하여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는 사람
이거라면,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스스로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거든.
단정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적어가며 말이다.
이렇게 내가 그려왔던 지성인의 절반만 추구한다면
'반 지성인'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지금의 내겐 이게 최선이다.
[2020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