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2년간 구독하여 사용하던 스마트밴드의 사용을 그만두었습니다. 화면도 없는 밴드라 순수히 운동과 수면을 포함한 일상 중에 내 몸 상태가 어떤지 24시간 기록하고 확인하기 위한 도구였는데, 최근 구독료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 이제 내 몸 상태는 별다른 기록 없이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록을 그만두자마자 운동횟수가 줄어들고 식단이 무너지는 등 자기 관리의 강도가 확연히 악화되더라고요. 불현듯 예전 썼던 아래 글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 옵니다.
코로나 시절 재택근무를 할 때, 하루 날을 잡아서 내가 무얼 하고 사는지를 깨어날 때부터 잘 때까지 분 단위로 기록해 본 적이 있다. A4지를 가득 채울 만큼 빽빽한 결과물이 나왔는데 같은 종류끼리 묶어보면 크게 아래와 같이 네 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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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8.6시간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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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휴식 7.9시간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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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4.3시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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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 3.2시간 (13.3%)
이후 3일을 더 해봤는데 결과는 비슷했다. 각 항목이 +- 0.2시간도 차이 나지 않았다. 딱히 큰 이벤트가 없던 주간이라 편차가 크게 없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집에서 일할 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잘 이해하게 되었는데, 정작 신기했던 것은 이렇게 적는 것 그 자체로 더 열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는 거다.
평소 이럴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업무와 자기관리에는 더 많은 시간을 썼고 휴식 시간은 짧았다. 단순히 예상과 현실 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기록을 하면서 더 열심히 사는 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기록을 해야 하니까, 누가 보지도 않는데 30분 하고 쉴 것을 한 시간을 하게 되고,15분 쉴 것을 5분 쉬곤 했다는 것이다. 이게 '기록의 힘'이다.
기록은 팩트(Fact)를 그대로 남겨 스스로나 남이 활용하고 참고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기록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은 하루를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되고, 매일 가계부를 쓰는 사람은 뭔가를 지를 때 좀 더 고민하게 되는 법이다.
예전 인도의 모 공장에서 생산성 개선 컨설팅을 할 때, 가장 먼저 세팅한 것이 '기록하는 행위'였다.
여러 생산 기계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생산성 지표와 기준을 셋업한 뒤 직원들로 하여금 매일 기록하여 미팅 때마다 논의할 수 있게 구조를 짰고, 나중에는 매시간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시 그 공장은 IT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그냥 한 시간에 한 번씩 현장 책임자가 칠판에 숫자를 쓰고 타겟 달성 여부에 따라 초록색, 노란색으로 표기를 하게 만들었는데 물론 초기에는 저항도 심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직 컨설팅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해결 세션들이 끝나지 않았고, 그 논의의 결과물들이 실행되지 않았음에도 생산성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각자 파트에서 자기 일에만 오롯이 집중하던 사람들이 매시간 현황을 돌아보게 되었고, 목표와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경쟁하는 다른 팀과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성과는 좋아질 수 있었다.
4개월 뒤 난 기계별로 20-30%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내며 뭄바이 공항을 나올 수 있었는데,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상기한 기록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믿는다.
이런 원칙은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처음 적었던 3일간의 경험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바쁜 날,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날에는 '하루 기록하기'를 적용해 보고 있다. 대단한 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냥 A4지 한 장 뜯어와서
07:00 - 07:15 회사 도착
07:15 - 08:00 메일 확인
08:00 - 08:30 데일리 미팅
이런 식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그 결과를 굳이 엑셀에 옮겨 담을 필요도 없고 심도 있는 분석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적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으므로 잠자리에 들 때쯤, '아 이만하면 하루 잘 살았다' 하며 부욱부욱 구겨 휴지통에 던지면 그만이다. 물론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고 평소보다 더 피곤해지긴 하지만 확연히 다른 날과 달라짐을 느낀다.
난 40년 가까이 일기를 써왔고 가계부도 매일 쓰는 지독한 '기록주의자'이다.
하지만 그 기록들을 다시 돌아보며 활용하는 일은 드물다. 한때는 다시 보지도 않을 기록들을 시간 들여 남기는 것 자체가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위의 경험들을 하고 나서 돌아보니 과거의 기록을 돌아보며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그 동안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다.
그러니 계속,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2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