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비운의 천재'라는 표현을 듣고 이에 꽂혀서 쓴 글입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여러 번 이 글을 읽고 생각하며 고민해봤지만 저의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글로서 무언가를 해내진 못했지만, 여전히 글을 쓰며 그것으로 인생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1. 고종수
축구선수 고종수. 그를 칭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비운의 천재’이다.
90년대 후반, 당시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멋들어지게 휘어지는 왼발 프리킥과 정확한 패스 실력으로 프로축구팀 수원삼성과 국가대표팀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그다지 좋지 못했던 자기 관리와 계속 이어지는 부상, 톡톡 튀는 성격으로 인한 불화 등으로 조용히 사그라들고만 아까운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그가 은퇴를 결정한 것은 서른한 살 때, 축구선수로서는 이른 시기였다.
안정환, 이동국과 더불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불리었으나 월드컵에서 여러 차례 득점한 안정환처럼 절정의 시기를 겪어보지도 못했고, K리그 득점 신기록을 여전히 경신하고 있는 이동국처럼 오래 그라운드에 서 있지도 못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가 본인의 천재성만 믿고 교만했다고도 하고, 리니지 같은 게임에 빠지는 등 자기 관리에 소홀했다고도 하며, 한국 축구계가 그를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 등 다양한 평가를 쏟아냈었는데, 이러한 다양한 평들을 진주목걸이처럼 꿰어내는 일관된 수식어는 ‘비운(悲運)’이었다.
2. 비운의 조건
고종수의 ‘비운’은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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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1.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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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2.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재능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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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3. 그러다 그 재능을 사용할 기간을 넘겨 버렸다.
이에 비해 박지성이나 안정환 같이 대성한 축구선수들은 타고난 재능을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쓸 수 있었기에 이 '비운'이라는 수식어에서 자유롭다.
축구선수로서의 재능을 전혀 타고나지 않아서 청소년대표 한 번 못해보다가 결국 평범한 선수로서 축구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축구에 쏟아부은 시간을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들에 투자해야 했다.
김연아를 생각해보자. 분명 그녀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균형감각이 전혀 없는데다가 머리만 큰 체형으로 태어났다면 제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한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로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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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1.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O)
그리고 그녀는 그 재능을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적절히 잘 사용했다. 그녀가 피겨스케이팅이 아니라 리듬체조를 했다면 지금 못지않게 잘했을 수 있지만 테니스나 유도를 배웠다면 지금의 위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너스 윌리엄스를 누르는 김연아를 상상할 수 있는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자기에게 딱 맞는 종목을 찾아낸 김연아에게 아래 ‘비운의 요건’은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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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2.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재능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 (X)
피겨스케이팅은 여타 다른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나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동이다. 나이 마흔이 넘어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는 선수는 없다. 있다 한들 그들의 근력은, 그들의 균형감각과 유연성은 김연아와 같은 한창때의 어린 소녀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김연아가 서른네 살에 피겨스케이팅 선수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로 그녀는 아래 요건과도 전혀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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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3. 그러다 그 재능을 사용할 기간을 넘겨 버렸다 (X)
이렇듯 그녀의 선수로서의 인생은 ‘비운’의 굴레에 씌지 않았으며, 타고난 재능 위에 부단한 노력의 힘을 더함으로써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한국에서 가장 빛나는 운동선수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나도, 당신도 비운의 천재
이런 정리가 꼭 스포츠 선수에게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재능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면, 그리고 그 재능이란 것이 사전적 정의에 기반할 때 '남들과의 비교에 기반한 상대적 우월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 모두는 재능이라는 것을 타고났으며 고로 우리 중에서도 ‘비운의 천재’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나름의 논리를 획득하게 된다.
모차르트 식의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성은 아닐지라도, 우린 누구나 다른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하는, 더 나은 분야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떤 이들은 수학을 잘하고, 어떤 이들은 말을 잘하며, 어떤 이들은 얼굴이 잘생겼고, 어떤 이들은 근력이 좋다. 어떤 이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어떤 이들은 손놀림이 좋으며, 어떤 이들은 눈썰미가 좋고, 어떤 이들은 참을성이 좋다.
재능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다만 발견하지 못하거나, 적절히 개발하지 못할 뿐이다. 한국의 성적 일변도의 교육 시스템을 생각해봤을 때 예체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어릴 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은 발견한다 하더라도 이에 초점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내 경우 중고등학교 때 가장 잘하던 과목이 문학과 국어, 한문이었다. 빼어나지 못했던 수학, 과학에 비해 이 과목들의 성적은 항상 최상위권에 있었고, 매일같이 일기도 쓰고 가끔 시도 썼던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이런 과목에만 마냥 집중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난 ‘이과생’이었고, ‘공대생’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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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2.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재능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 (O)
별것 없는 인생이기는 하나 그래도 난 글을 쓰는 것과 복잡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 다수의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잘하는 편이다. 직업적으로 따져본다면 ‘학원 강사’나 ‘프리랜서 작가’ 정도가 내게 어울리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이런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젊기는 하나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이다. 시간을 두고 재능을 갈고닦지도 않았으므로 이제 와서 빛이 날 가능성도 낮다. 결국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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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3. 그러다 그 재능을 사용할 기간을 넘겨 버렸다 (O)
이러한 논리로 봤을 때 나는 고종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대단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것은 물론이나, 내가 가진 작은 재능들마저도 잘 써먹지 못하였으므로 비운의 천재의 정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4.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또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인가? 어렸을 때의 선택 때문에, 남들의 강요 때문에, 결혼과 육아 때문에, 게으름과 나태, 혹은 다른 이유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지는 않았는가? 가족을 부양하느라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짊어지고 살고 있거나, 육아로 인해 본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누구누구의 집사람’,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역시나 ‘비운의 천재’인 당신에게 위로를 보낸다.
인생은 물론 길다. 비운을 행운으로 바꿀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나이 먹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낸 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도 더 많아질 것이다.
9회 말로 끝날 야구 게임이 15회, 16회까지도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지고 있는 축구팀이 전후반 90분이 끝났는데도 연장전 30분을 더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아직 늦지 않은 걸까.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 들어서 발굴하고 더 키울 수 있는 재능은 몇몇 분야에 한정된다. 장년의 나이에 새로이 시작하여 빛을 낼 수 있는 영역은 열 살짜리 아이 앞에 놓여진 선택지에 비하자면 극히 작다. 나이가 들면 퇴화되는 신체의 여러 부분을 활용하지 않는 영역, 떨어지는 집중력과 의지력에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영역, 그간 쌓인 경험이 높은 상관관계로 도움이 되는 영역, 딱 그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역은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비운의 천재로서 살아온 나와 당신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 비운의 천재로서 살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아니다,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모두 모두 희망을 놓치지 말고 힘내자며 글을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우울하고 슬픈 일이 그러하듯, 여기에도 희망의 조각 하나쯤은 있다.
고종수는 비운의 천재로서 축구 인생을 마감하였다. 선수로서 그는 분명 성공하지 못했고, 나이가 들었으니 다시 성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쯤 그는, 혹은 미래의 어느날 그는, 어딘가의 조촐한 그라운드에서 그 타고난 왼발로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서 자기 못지않은 '왼발의 마술사'를 훈련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은 이렇게 차는 거야" 소리 지르면서 말이다.
그러면,
그러면 된 거다.
나도 당신도,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뭔가를 하면서
남은 인생을 조금 더 재밌게 살면,
삶을 조금 더 즐기면,
그러면 된 거다.
별것 없는,
비운의 천재 중 한 명이 썼다.
[2012년 7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