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내 인생의 노래들

이 글의 원글은 2006년에 문성닷컴에 올린 ‘문성가요대상 100곡'입니다. 이 글을 다시 올리기 위해 곡을 처음부터 다시 고르고 골라 30곡을 겨우 결정했고, 당시에는 없던 순위까지 매기는데 몇 달이나 걸렸네요. 당연히 2006년 버전과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습니다. 20년 전 100곡을 고를 때는 아래 글에도 나오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생각하자'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들었으면 하는 노래'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곡을 추려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6년 목록 대비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들이 대거 빠졌습니다. 댄스곡도 거의 사라졌고 그 자리를 인생의 특정 순간에 옆에 있어준 노래들이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삶을 향한 관조가 바뀌어서인지 'Bravo my life!'나 '넌 할 수 있어'와 같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응원하는 노래보다는 조금 더 삶을 무거운 시각으로 보는 노래들이 새로이 들어왔습니다. 뭐, 마땅한 변화라 생각합니다. 2006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뿌리는 같을지언정 다른 잎을 피우고, 다른 향을 내고 있으니까요. 허락된다면 2046년과 2066년에도 이런 작업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땐, 어떤 곡이 새로이 들어오고 어떤 곡이 나가게 될까요.
(박수와 함께 사회자 등장)
자. 여러분, 요즘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하루하루 별 재미없는 삶에 찌들고, 집에 와서는 드라마보기와 인터넷 서핑으로
귀중한 하루를 민들레 홀씨 날리듯 훌훌 날려 버리고만 있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하루는 너무도 소중하고
그 하루가 모인 여러분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냥 매일매일 해야만 하는 '의무'와 그를 위한 '쉼'으로만 반복되기엔
너무 아까운 게 바로 우리들의 인생 아닐까요.
이번 '문성가요대상'은 그러한 삶에
자그마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꾸 나는 왜 이러지, 내 삶은 왜 요 모양 요 꼴인거지 고민하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인생에서 즐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자구요.
이런 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고,
이런 것들을 만끽하기에도 우리의 하루는 너무도 짧고 부족하니까요.
본 가요대상은 이러한 취지 아래 기획되었으며
무려 두 달간의 기나긴 고뇌를 거쳐 탄생되었습니다.
무려 230곡이나 되는 후보곡이 일차적으로 선정되었으며
한달에 걸친 진중한 감상과 심사가 있었고,
그 와중에서 수많은 노래들이 탈락하면서
좀 오래된 노래 위주의 편파적인 편성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이건 KBS 가요톱텐도, MBC 10대 가수 가요제도 아닌
개인의 가요대상일 뿐이니까요.
(잠시 객석을 둘러보며)
자, 그럼 1위부터 순서대로 곡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회자 퇴장한다)
[내 인생의 노래 1위부터 30위까지 – 2026년에 새로 쓴 버전]
1.
신해철 - 나에게 쓰는 편지 (1991)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내게는 삶의 나침반 같은 노래. 인생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에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게 했던 철학 입문서 같은 노래였다. 이 곡을 몰랐더라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수없이 듣고, 부르고, 되새기고, 곱씹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노래 1위 곡.
2.
패닉 -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1998)
"내 바다 위에는 깊은 슬픔과 헛된 고민들 회오리치네"
1998년 어느 여름날,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친구 집에서 CD로 들은 후 충격을 먹고는 집에 오면서 바로 테이프를 사서 저녁 내내 들었었다(CD 플레이어가 없었거든). 삐걱거려서 잘 열리지도 않는 내 작은 서랍 속에도 찰랑거리는 바다가 있더라.
3.
015B - 5월 12일 (1993)
"지금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도 가슴 한편에 묻어둬야 돼"
5월 12일은 정작 나와 별 상관이 없는 날인데, 매년 이 날이 되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떠오른다. 나보다 한 세대 윗분들은 10월 31일만 되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떠오른다던데, 나는 5월 12일이 그렇다. 사람마다 일자는 다르겠지만 365일 중에 뭔가 가슴에 콕 박히는 날들이 있을 텐데 이 노래는 그걸 절묘하게 잘 잡아냈다.
4.
신해철 -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1991)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이제는 안다.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긴 시간을 스쳐 가는 순간들이라는 것을. 겪어보니 그렇더라.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5.
김광석 - 바람이 불어오는 곳 (1993)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가사 첫 줄로 마음을 저며놓는 노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나는 이미 덜컹거리는 무궁화호 창가에 앉아 창문 밖을 기분 좋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그 곳으로.
6.
강산에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1998)
"그래 다시 가다 보면, 언젠간 날 위해 부서지는 햇살을 보겠지"
강산에의 다른 노래 '넌 할 수 있어'가 한 편의 수필이라면, 이 노래는 한 편의 시이다. '넌 할 수 있어' 이후 강산에가 겪어온 세월이 잔뜩 묻은 덕분인지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며 진한 위로를 건네 주는,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 정말 좋은 곡이다.
7.
무한궤도 -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1989)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가사 하나하나가 삶을 향한 관조이자 철학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 이런 노래를 듣고 자랄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내 앞의 생도 언젠가는 끝나갈 텐데, 그때 “이만하면 되었다. 후회는 없다”고 조용히 되뇔 수 있길 소망한다.
8.
김현철 - 일생을 (1993)
"나 일생을 살아오며, 죽을 만큼 정말 자신 없는 일. 사랑했던 너와 헤어지는 일"
김현철과 함께한 고2의 겨울이 있었다. 이 노래 '일생을'과 김현철의 또 다른 명곡 '나를…'은 같은 시기에 나온 곡은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내게 와서, 그 겨울에 날 세게 한 번 후려치고 갔다. 고3으로 넘어가는 길목, 수많은 상념으로 가득찼던 그 겨울은 좀 특별했었다.
9.
넥스트 - HOPE (1999)
"그래,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게 있다고 큰 소리로 외치면…"
내 인생의 등락을 그래프로 그려보자면 최저점은 분명 2001년 정도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다. 제3자가 들으면 유치한 제목에 뻔한 가사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의 내게는 이 노래가 무엇보다 소중한 위로이자 진실한 조언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이 노래 전주만 들어도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10.
푸른하늘 - 사랑 그대로의 사랑 (1992)
"내가 얼마만큼 그대를 사랑하는지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1994년이던가. 매일 밤 유영석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FM 인기가요’의 엔딩곡이 이 노래였다. 매일 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라디오 옆에 커다란 베개를 부둥켜안고 누워 이 곡을 듣고 있던 내가, 그때 바라보던 천장이, 그 천장을 캔버스 삼아 그려지던 수많은 그림들이, 아직 기억난다.
11.
신해철 - 민물장어의 꿈 (1999)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군대에서의 첫 번째 휴가를 나와서, 집에서 무한 반복으로 끝도 없이 듣고 또 들었었다. 난 당시 스스로를 말라 비틀어진 민물장어로 생각했었나 보다. 가사 첫 줄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을 보면. 지금도 들을 때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훌륭한 가르침이 담겨 있는 곡이다.
12.
015B - 수필과 자동차 (1996)
"버스정류장 그 아이 한번 눈길에 잠을 설치고, 여류작가의 수필 한 편에 설레어 할 때도 있었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씁쓸해 하는 노래인데, 이 곡이 나온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간 세상은 더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인지 최근에 가사를 바꾸고 AI 가수를 도입한 리뉴얼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30년이라,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흘렀구나. 마지막 수필책을 읽어본 게 언제더라.
13.
이브 - I'LL BE THERE (1997)
"I'll be there! 나에겐 그대 하나뿐이야. 항상 너만 꿈꾸며 살아가는 나에게로"
이 곡은 일종의 '대곡'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한데 특히 마지막 부분에 크게 터트린 후 천천히 사그라지며 매듭을 짓는 것이,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하다. 불꽃처럼 화려하던 스무 살 젊은 날에 주로 들어서 그런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곡이다.
14.
김광진 - 편지 (2000)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로 시작하여 "이 맘만 가져가오"로 끝날 때까지 안타깝고 절절하기만 한 노래. 뭔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기에는 살짝 애매한 김광진의 미성은 이 노래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다. '마법의 성', '송가', '여우야' 등도 모두 좋은 노래로 기억하지만 내겐 이 노래만큼은 아니었다. 힘겨운 날들을 견디게 해준 이들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15.
넥스트 - The Dreamer (1994)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누구나 자의식이 과잉되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사춘기 때면 용납 가능한데, 성인이 된 다음이라면 좀 낯부끄러운 일이 될 테다. 다행히 난 그게 중2~고1 정도였는데, 뭔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과 슬픔을 남에게 표출하지 않고 일기를 쓰고 노래를 들으면서 풀어냈었다. 그때, 고맙게도 이 노래가 내 옆에 있어 주었다.
16.
김동률 - 청춘 (2014)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아직 뜨거운 가슴이 뛰고 변한 게 없는데 뭐가 이리 어려운 걸까"
'이등병의 편지'가 20대를 위한 노래, '서른 즈음에'가 30대를 위한 노래라면, 이 노래는 40대를 위한 노래다. 듣다 보면 고개 끄덕이며 공감하다가 결국은 침울해지는 노래. 분명 쥐고 있었는데, 분명 옆에 있었는데 어느새 손아귀에서 모래처럼 흘러 사라진 청춘이 한스럽다. 다 어디로 간 걸까.
17.
이상은 - 언젠가는 (1993)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이십 대 초반에 이런 가사를 쓰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쓸쓸히 부를 수 있던 이상은. 그녀가 대중의 관심 속에서 이런 곡을 계속 쓰고 불러왔다면 세상은 좀 더 풍요로워졌을 것이라 믿는다. 2006년 글에도 이 노래를 인생의 노래 중 하나로 꼽았었는데, 사실 이 노래는 그 때보다 지금 더 골라야 하는 곡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2006년의 난 젊음을 잘 몰랐던 것 같거든. 지금은 안다. 그때의 하루하루가, 모든 관계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까웠단 것을…
18.
여행스케치 – 서른을 바라보며 (1994)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가난했던 날들.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후회하지 않으리"
여행스케치의 명곡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 이루어 놓은 것 하나도 없지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후반부에 몇 번이나 외치는 노래의 다짐이 그냥 내 얘기 같아서 정말 많이 듣고, 큰 힘을 얻었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많은 이들의 공식 서른 입장곡(?)이라지만 난 이 노래를 고르겠다. 2006년, 서른의 목전에서도 이 곡을 인생의 노래 중 하나로 골랐었는데 그 때는 문성닷컴에 이렇게 적었었다. “아름답게 간직해야지. 지금 이 가난한 날들을 말야”
19.
이현도 - 사자후 (1996)
"운명을 피할 수 없더라면, 그대여 그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라"
이현도의 곡들은 듀스 시절 곡이나 솔로 시절, 그리고 유승준에게 준 '열정' 같은 곡까지, 뉴 잭 스윙 특유의 비트로 사람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수많은 명곡 중 굳이 다소 유치하기까지 한 가사의 이 곡을 고른 것은, 스무 살 때 왠지 이 노래가 내 '주제가' 같다는 생각을 한 치기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이 노래 때문에 한때 커다란 스키 장갑을 끼고 다니기도 했다. 그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과 스파링이라도 하는 듯 살았다.
20.
이지훈 - 인형 (2001)
"보고 싶겠죠. 그건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힘들진 않게 할게요"
이 노래에는 별 사연이 없다. 그냥 너무 잘 생긴 친구들(이지훈, 신혜성, 강타)이 부르고 연주하는 멋있는 발라드 곡에 눈을 휘둥그레 하며 좋아했을 뿐이다. 아마 이런 류의 노래는 지금도 수많은 아이돌 가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겠지만 누구나 자기에게 퍼즐의 조각처럼 들어맞는 곡이 있기 마련이고, 내게는 이 곡이 그랬다. 딱 이런 노래가 필요했던 인생의 순간에 우연히 귀에 들어와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혀 평생을 듣게 되는 노래 말이다. 노래방에서 도전해 본 적도 여러 번 있는데 혼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니더라.
21.
양파 - 천사의 시 (1996)
"난 변한 게 없는데… 아직 그 자리에 가까이, 곁에 있어"
1997년 겨울이었을 거다. 지금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사의 이 노래는 추운 날씨에도 내 겨울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내 옆에 무슨 천사가 서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스무 살을 앞둔 불안한 시절 그냥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 주어 참 고마웠다. 양파의 최고의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다 알아요’를 뽑겠지만, 그 겨울이 있었기에 이 곡을 고를 수밖에 없다.
22.
조용필 - Q (1989)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길거리를 지나가다 이 노래를 듣고 반해 그대로 테이프를 사 왔었다. 아무래도 조용필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앨범을 사는 건 내게도 어색한 일이었다만, 이 노래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명곡이다. 2006년에는 이 곡과 더불어 ‘바람의 노래’를 인생의 노래로 골랐는데, 100곡을 30곡으로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 곡 하나만 남긴다.
23.
015B - 이젠 안녕 (1991)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가까운 친구들과 수도 없이 노래방을 가던 고등학생 시절,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을 때 고르는 마지막 곡은 항상 ‘이젠 안녕’이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첫 소절을 불렀지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서로 말 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까지. 못 본 지 오래오래 된 친구들아.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겠지?
24.
신성우 - 기쁨이 될 것을 (1994)
"난 알고 있어. 이런 고통의 시간들이 내겐 기쁨이 될 것을"
난 사춘기를 노래로 버텼었는데, 그때 정말 많이 듣고 되새기던 노래 중 하나다. 살다 보니 고통의 시간들이 죄다 기쁨으로 실제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통의 순간에는 그렇게 믿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된다.
25.
토이 - 좋은 사람 (2001)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유희열은 표절로 무너졌지만, 그의 노래와 함께했던 나의 시간까지 표절은 아니겠지. 토이의 5집은 군대 병장 시절 테이프로 열심히 듣다가 내무반에서 분실한 후 허겁지겁 찾아다니던 일이 있어 더욱 각별하다. (결국 못 찾았다) 김연우가 부르는 토이의 발라드 리스트에는 수많은 명곡이 있고, ‘여전히 아름다운지’와 ‘스물 세 번째 생일’ 중 고민 끝에 이 곡을 올린다. 세 곡 다 2006년에는 100위 안에 넣었던 곡들이다.
26.
이적 - 다툼 (2010)
"얼마나 많은 다툼 뒤에 우린 비로소 뉘우칠 수 있을까?”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아이패드 1세대를 현지에서 구입한 후 이적 4집 앨범을 통으로 넣어 다녔었다. 어느 일요일, 벽돌처럼 무거운 구세대 아이패드에 담긴 이 노래를 들으며 싱가포르의 뙤약볕 밑을 걸어 다니던 날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제와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노래는 아직 들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나의 추억과는 별개로, 이적 4집은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다투다가 헤어지는 과정 곳곳에서 느끼는 감정을 여러 노래로 나누어 담은 명작이다. 이 ‘다툼’ 외에도 수많은 명곡이 묻혀있다.
27.
이승환 - 애원 (1997)
"그대라면 어떤 것도 견디겠다던, 그날을 기억하는데"
이승환의 발라드라면 오래된 팬들은 '천일동안', 좀 덜 오래된 팬들은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를 꼽을 거다. 하지만 나는 단연코 이 노래다. 절정 부분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나 길고, 기대만큼 빵 터뜨리지는 않지만 곡의 주제인 애절함을 위해 터질 것 같은 울음과 절규를 참고 마무리하는 것이 일품이다. 이승환 앨범은 여러 개를 샀었고 좋아하는 노래도 꽤나 많다. ‘가족’, ‘화려하지 않은 고백’,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물어본다’, ‘다만’까지. 이승환 노래는 곡과 보컬은 너무 좋은데, 가사가 내 기준에는 조금씩 아쉬워서 이 리스트에 많은 곡을 넣지는 않았다.
28.
일기예보 - 인형의 꿈 (1994)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댄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좋아좋아'와 '인형의 꿈'. 완전히 다른 결의 이 두 노래를 한 앨범에 넣고 둘 다 잊히지 않는 명곡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 일기예보라는 그룹의 힘이다. 그중 '인형의 꿈'은 짝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이 교과서로 삼음직한 노래. 강현민의 곡과 슬픈 가사도, 나들의 애타는 보컬도 흠을 잡을 것 없이 그저 훌륭하다. …그래서 나도 이 노래를 교과서로 삼았냐고? 노 코멘트하겠다.
29.
김광석 - 내 사람이여 (1995)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
김광석의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 김광석의 무시무시한 역량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기도 하다. 요즘 기준으로 굉장히 긴 노래인데, 후반부에 점점 감정이 올라간 후 마지막 ‘내 사람이여!’ 라며 여러 번 절규할 때의 전율이란. 듣고 나면 몸의 힘이 쫙 빠지면서 한동안 멍해 있게 되니 작정하고 들어야 하는 노래. '서른 즈음에'와 '나의 노래', '사랑했지만',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이라는 이유로’, ‘너에게’ 등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가 무척이나 많지만 굳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를 내밀어 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의 희생과, 이 정도의 각오와, 이 정도의 외침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30.
김동률 - 동행 (2013)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거라고 나 역시 자신 있게 말해줄 순 없어도 우리가 함께 하는 오늘이 또 모이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을까"
사랑, 우정, 도전, 꿈, 성공과 같이 뜨거운 가치들이 다 지나가버린 인생의 늘그막에서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동행'이 아닐까. 아직 내게는 멀리 있고 우선순위도 떨어지지만 항상 잊지 않고 있다. 조금씩이라도 내 속에서 위로와 격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함의 시간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김동률의 대곡 '동행'을 이 리스트 마지막에 남겨둔다.
(막 다시 내리고 다시 사회자 등장)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다 읽어보신 분 없으시죠?
남들 보라고 쓴 글은 아니지만
이거 써내리면서 어떤 글을 쓸 때보다 기분이 좋았으니 그걸로 된 것 같습니다.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내가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렇게나 재밌을 수 있구나 하는 걸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말이죠.
밤이 깊었고 지금은 새벽 네 시입니다. 이만 자야겠네요.
조심히들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2006년 3월 4일 원래 글 작성/2026년 목록 재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