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에서의 한국의 도전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특히 3차전 남아공과의 경기는, 대한민국 월드컵 최악의 경기로 꼽힐 정도로 엉망이었는데, 선발 명단과 공격 전술, 지고 있을 때의 대응까지 경기 내내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이 이어졌다.
결국 32강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우리의 월드컵은 끝이 났는데, 이번 실패의 책임은 모두가 말하듯 홍명보 감독과, 절차를 무시하며 그를 우겨넣은 축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 인터넷에서 감독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무척이나 거센 이때, 난 조금 다른 생각을 해봤다.
"그는 왜, 굳이 다시 월드컵 감독을 한다고 했을까?"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미 실패를 경험한 감독이다. 1무 2패라는 성적표와, 그보다 더 참담한 경기력은 이번 월드컵 직전까지 '대한민국 최악의 월드컵'으로 기억될 정도였다.
수많은 손가락질에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호박엿 세례까지 받았던 그는, 이후 축구협회의 전무로서의 준수한 행정력과 프로축구팀 울산FC의 감독으로서 괜찮은 성적을 바탕으로 2014년의 악명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2022년에는 한국도 월드컵에서 오랜만에 16강에 진출하며, 축구팬들도 예전의 안 좋은 성적쯤은 이젠 '그땐 그랬지', 추억 정도로 넘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월드컵 감독을 다시 맡겠다고 했다. 도대체 왜?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고연봉이 이유라고 보진 않는다. 그는 선수 생활과 감독 생활을 통해 이미 많은 돈을 벌었고, 부동산도 제법 있다고 들었다. 생명이 길 수 없는 국가대표팀 감독보다 프로축구팀 감독을 오래하는 것이 생애 소득 면에서 더 나을 수도 있다. 돈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짐작건대 그는, '명예' 때문에 다시 월드컵에 도전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영웅이 되기 전에도 이미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최고의 리베로라 각광받으며 명예로운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본 J리그에 진출해서도 꽤나 좋은 성과를 냈다. 은퇴 후엔 2010년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며 감독으로서도 성과를 내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2014년 월드컵에서 참담한 실패를 하고 하루아침에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을 해버린 것이니, 모르긴 몰라도 그는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
지나가다가 월드컵 관련된 소리만 들어도 핏줄이 곤두서지 않았을까.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깬 적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샤워하다가 문득 생각난 월드컵 생각에 벽을 주먹으로 때려본 적도 있을 듯하다.
어떻게 아냐고? 그런 실패를 경험한 것이 어디 홍명보뿐이겠는가.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실패를 다 경험해봤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모두가 잊어줬으면 하는 끔찍한 순간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홍명보는 그걸 견디지 못했다 생각한다. 선수로서 높은 명예를 경험한 그는, 실패한 월드컵 감독이라는 오명을 쓰고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게다가 2014년에는 변명거리도 있었다. 선수단이 고열로 집단 고생을 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멤버도 지금보다 약했다. 준비 기간도 짧았다. 그러니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한다면, 이번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감독으로 재선임된 후 월드컵 예선과 평가전을 통해 드러난 그의 역량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부 전술의 결핍과 임기응변의 부재라는 문제는 2014년에도, 2026년에도 그대로였다. 팀마다 수십 경기를 치른 후 그 결과로 평가받는 프로축구에서는 통했을지 모르나 그의 성향과 역량은 전력을 쏟아부은 단 몇 경기로 평가받는 월드컵에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았다.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월드컵을 두 번 실패한 세계 최초의 감독이라는 더 큰 오명을 이름 앞에 두게 되었다. 이제 그의 이름은 4강 신화의 주인공보다 실패한 월드컵 감독으로서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져 버렸다.
난, 그가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정말 월드컵 같은 단기전에 어울리는 감독인지, 저 뛰어난 선수들과 감독들이 다 몰려나오는 삼세판 승부에서 진정 이길 수 있는 감독인지 냉철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평가에도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는, 이렇게 되뇌며 재도전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지금 내 역량으로는 무리다."
이 고백이 있었다면, 그는 스스로를 두 번이나 나락으로 던져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많은 선수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지도,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축구 행정가나 프로축구 감독으로서 조금씩 조금씩 명예를 회복한 끝에 말년에는 첫 번째 실패를 웃으며 회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다. 홍명보 감독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직장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봤다. 이 실패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알아서 떠오르며 나를 세게 치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난 몸을 부르르 떨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으려 무리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매일 최선을 다할 뿐, 한 방의 역전 홈런이 터져 나오는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은 지울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실수든 능력의 한계든 환경적 요인이든 아니면 오로지 남 탓이든 간에 실패한 일은 실패한 일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은 계속 과거에 묶여 있는 자신과 싸우게 된다.
컨설턴트로 일할 때, 전략은 이길 수 있는 전장에 한정된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과정이라 배웠고, 그대로 실천해왔다. 이 전략은 우리 개개인의 커리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길 수 있는 전장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아니,
조금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이기지 못할 전장을 가려내고,
싸우지 말아야 할 전쟁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2026년 7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