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선택

20년 전 이 글에서 예측한 대로 살다 보니 선택의 기로는 점점 줄어들고, 그 갈림길에서의 저의 재량도 점점 줄어만 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매일같이 크고 작은 선택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선택들이 미래의 선택을 좌우하리라는 믿음도 동일합니다.
그대의 인생은 KTX.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고 속도로 달려야 해.
서행과 연착은 허용되지 않아.
새마을호 인생쯤 되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순 없어.
그저 달리렴. 일직선으로.
(동대구역 5번 승강장 기둥에 누군가 볼펜으로 적어놓은 글)
드라마 하얀거탑의 마지막 회를 봤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열정적으로 일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주인공 장준혁의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일에 대한 사랑, 열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글쎄다. 죽음을 앞두고 집도하는 자신을 회상하는 장준혁은 멋있지만, 죽음을 앞두고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 34번째 장을 만드는 날 떠올리는 건 폼이 안 난다. 아쉽지만 저런 멋짐은 내 인생 다른 줄기에서 찾아야 하겠지.
그러고 보면 나도 메스를 들고 살 수도 있었다. 당시에는 ‘피 보는 게 싫다’라는 등의 유치한 이유를 둘러대며 공대를 택했지만, 사실 열아홉 살이 인생 앞날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떠한 외부적인 압력이나 간단한 계기만 있었대도 그때의 선택은 쉽게 바뀌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물론 앞으로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뒤바뀌었겠지.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녀석에게 앞으로의 삶을 선택하도록 맡겨버리는 것은 인생의 잔인한 면모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남에게 맡기는 것도 말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점을 조금 바꿔, 취업 시즌에 지금의 회사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보결로 합격했으니 생각 있으면 우리 회사로 오세요"라는 전화를 받고 난 뒤, 답을 줘야 하는 몇 시간 동안 아주 조그마한 계기만 있었더라도 내 삶은 지금과는 크게 다르게 뻗어왔겠지.
이렇듯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고 형태가 잡혀간다. 하나하나 선택의 결과가 긴 시간에 걸쳐 연결되어지며 지금의 모습을 빚어내는 것이다.
뚜렷한 모범답안은 없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두 개의 잔 중에서 독배를 마시면 즉사한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여러 인생 경로 중 어느 쪽 삶을 사느냐의 문제고, 각 인생의 우열을 가릴 수도 없기에 뭐가 맞다 틀리다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러한 선택의 기회 자체가 자꾸만 감소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무언가를 고를 수 있는 기회도, 각 선택의 기회에서 고를 수 있는 보기도 세월과 함께 점점 줄어만 간다.
열일곱 살 때 이과를 갈래 문과를 갈래 예체능을 갈래 선택 앞에서의 난 세상 모든 직업에 다 도전해볼 수 있던 가능성의 존재였지만, 열아홉 살 때 어떤 전공, 어떤 대학으로 갈까 하는 선택 앞에서는 훨씬 줄어든 목록을 맞닥뜨려야 했다. 이후 스물여섯에 어떤 회사로 갈까 고민할 때 선택지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충분할 정도였고, 서른을 목적에 둔 지금에 와서는 '이 회사 계속 다닐까', '이직할까' 정도로 축소되었다.
앞으로 결혼하고 자식을 가지게 되면,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더 줄 것이다. 선택의 순간도 잦아들 것이며 그 순간이 온다 할지라도 누구나 고를 수밖에 없는 '역시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부르셨습니까?”
“응 문부장. 당신한테 말하기 좀 미안한 일인데.”
“예...”
“이번에 회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 같아. 대충 알고 있지?”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미안하네.”
“예?”
“아쉽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네. 시간은 한 달 정도 남았으니 지금부터 준비해두게나.”
“…”
“나가보게. 옆자리 박부장도 좀 불러주고.”
짜잔. 여기서 문제. 아래에서 나이 든 문성이 고를 최적의 답을 체크하세요.
1.
높으신 분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어딘데 이러느냐고 윽박지른다.
2.
피식 웃으며 안 그래도 부르는 데가 열일곱 군데인데 먼저 말할 부담을 덜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3.
높으신 분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애가 아직 고등학생인데 어떡하냐고 꺼이꺼이 울며 빈다.
4.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며 자리로 돌아와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며 가족에게 어떻게 얘기할지 고민한다.
낮지 않은 확률로 내게 일어날 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선택은 뻔해 보인다.
이렇게 미래의 선택을 당겨와서 생각해보니, 인생은 그저 잔인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조급함을 느낀다. 이대로라면 내 인생은 아무 갈림길 없이 그저 쭉 뻗은 길 하나만 걸어가다가 힘없이 저물고 마는, 예정된 수순을 밟을 것 같아 두렵다. 지금 이대로라면 필연코 그 길에 다다를 것만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먼 미래의 내게 주어지는 선택은 결국 지금의 내게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하면, 긴 시간을 건너 더 다양한 선택과 더 좋은 보기가 내게 돌아오지 않으려나.
미래의 내가, 몇 살을 먹었든지 간에 건강하고 체력이 넘친다면 새로운 길을 뚫어낼 수 있을 것이고, 눈이 밝고 지혜롭다면 남들은 보지 못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젊고 창의가 살아 숨 쉰다면 땅 밑이나 머리 위의 길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바로 지금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들이 긴 시간에 걸쳐 하나씩 쌓여가며 더 나은 선택지로 나를 이끌 것이다.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만든다.
먼 훗날 정리해고 통보에 피식 웃을 수 있는 나는, 오늘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2007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