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년 전에 쓴 '평균의 삶'의 후속편이며 동일한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때만큼 당차지도, 자신감이 넘치지도 않습니다만,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위치를 재확인하고자 20년 만에 같은 주제로 글을 적어봅니다.
책 한 권 정도 분량의 꽤 긴 글을 ‘브런치’라는 작가 플랫폼에 연재한 적이 있다. 아주 날 것의 이야기를 하고자 가명으로 썼으며, 나름 목표했던 바를 이룬 후 지금은 글을 모두 내린 상태이다. 조회수가 6만을 넘었고 브런치와 다음(daum.net) 홈페이지 대문에 글이 걸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플랫폼임을 감안하면 나름 괜찮게 읽혔던 모양이다. 아래는 당시 받았던 댓글의 일부이다.
연재를 관통하는 주제는 ‘실패’였다. 나를 '실패한 직장인'으로 규정한 후, 성공학 일색인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실패학'이라는 반전 아이디어를 시도해본 것이다. ‘내가 실패한 이유’를 이십 개 가까이 짚어가며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실패를 다뤘었다.
그러나, 글 속에 등장하는 ‘실패자인 나’와 실제 ‘글을 쓰는 나’ 사이에는 애매한 괴리가 있어, 연재 중에 계속 자신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실패한 사람일까?"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 화목한 가정과 멀쩡한 몸 상태를 감안하면 실패라 부를 근거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당신은 성공했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지 않다’라 대답할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난 이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 백년 가까이 살아보니, 우리 사회가 말하는 성공은 결국 ‘부와 명예’라는 두 가지 줄자로 규정되는 듯 하다. 다른 많은 가치가 삶의 기저에 깔려 있긴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이름만 다를 뿐 부와 명예로 소급되며, 어떤 가치는 궤적을 달리하지만 부와 명예와 대등할 정도로 중히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기준으로 재단해보면 내 인생은 성공에서 거리가 멀다. 아니, 실패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한 직장인에 불과하며 모아둔 자산도 많지 않다. 다니고 있는 회사는 좋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회사가 내 명예를 드높여주진 않는다. 회사 안팎에서 대단한 일을 한 적도 없고 어딜 가서 인정 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다. 요약하자면 부도 없고 명예도 없는 삶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실패한 사람일까?”
이 글을 적어보면서 한참을 생각해봤는데 ‘아직은 아니다’가 지금 내릴 수 있는 답이었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나의 줄자를 갖다 대면 ‘실패’라는 판정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아직 철이 덜 든 것인지 모르지만,
난 내가 한강뷰 아파트를 갖거나 건물주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싼차를 몰고 럭셔리 해외여행을 다니기 위해, 혹은 거창한 수식어를 이름 앞에 붙여가며 상석에 앉기 위해 이 땅에 온 것도 아니다. 내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돈을 잘 벌면 물론 기쁘겠지만 그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세상의 성공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바득바득 살다가, 때 되면 늙고 병들어 죽는 게 인생이라면 굳이 태어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거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여러 선택도 세상의 성공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 졸업 후 '더 나은 삶'을 찾겠다고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간 것, 연봉 높은 대기업을 마다하고 '착한 회사'를 찾아 입사한 것, 전망 밝은 동남아 커리어를 툭 던지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그렇다. 이 나이에 이런 고루한 주제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물론 나의 줄자가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조금씩 더 나은 자신을 만들며 살자는 비전을 스물아홉에 정의하기도 했지만, 그 기준이 옳은지도, 그에 부합하며 살고 있는지도 여태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도 스스로를 때때로 다그치고, 종종 토닥이며 격려할 뿐이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프레임에 나를 억지로 끼워 넣은 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는 말자. 누가 뭐래든 내게 주어진 남은 날 동안 내 나름의 선한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다 가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자, 난 누가 봐도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실패하지 않았다.
그걸로 된 거다.
뭐, 아님 말구.
[2026년 5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