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은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고 AI 없이는 살기 불편한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정보화 사회’라는 말도 이제는 구닥다리로 느껴지네요. 삐삐조차 없던 시절을 거쳐 인공지능의 시대를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오래된 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장면 1. 삐삐를 들고 약속에 늦는 나
고등학생 시절, 삐삐가 이 세상에 강림하셨다. 혹여 수업 시간에 울리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선생님의 손찌검이 나오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삐삐 덕분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 적어도 상대가 어디 있든 연락은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삐삐도 인간 군상의 행태를 완전히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삐삐라는 것의 본질상 일방향성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버스를 타고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치자. 한참 가는 중에 무슨 시위를 하는지 공사를 하는지 길이 무지 막히기 시작했다. 차는 멈춰 섰고 이미 약속 시간은 넘어섰다. 답답한 마음에 가지고 있던 유일한 통신 장치인 삐삐를 꺼내 본다. 액정을 보니 상대방의 다급한 마음이 절실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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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스에 갇혀 있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버튼 두 개, 액정 한 줄 달랑 달린 이 무식한 기계는 숫자를 보여주는 게 고작이었다.
결국 음성 메시지가 일곱 개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만 하며 애만 태운 끝에 나는, 교통체증을 뚫고 한 시간이나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당연히 상대방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지? 잠시 자리를 비운 걸까, 다른 곳에 가버린 걸까. 그래, 삐삐를 치자. 공중전화가 필요해. 황급히 공중전화로 달려가니 세상에, 한 20명은 서 있다. 당시는 공중전화 앞 사람이 통화 길게 한다고 폭행도 하고 살인도 하는 실로 무서운 세상 아니었는가. 이런 와중에도 계속 내 삐삐는 울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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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장면 2.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나
때는 1994년. 5학년 4반 반장 철수는 일요일 아침 눈 비비고 일어나 아침 먹고 KBS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열심히 보고 있던 중, 갑자기 어제 선생님께서 내려주신 숙제가 생각났다.
뭐였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전화로 물어봐야겠다. 그는 가나다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수첩 형식의 전화번호부를 거실로 들고나와서, 반에서 제일 예쁘고 평소에도 친한 부반장 영희의 집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따르르르릉~
최민식 같은 걸걸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시오."
영희 아버지구나. 철수는 일순 당황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또박또박 말해본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영희 친구 철수라고 합니다. 영희 집에 있어요?"
"...누구냐... 넌?"
무서운 목소리에 철수는 이가 덜덜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본다.
"그러니까 저는 영희 친구 철..."
"없다!"
"아... 저기..."
철컥. 뚜뚜뚜뚜...
차가운 신호음만이 수화기에 남겨졌다. 철수는 할 수 없이 전화번호부에서 반에서 두 번째로 예쁜 선희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온 가족이 외출을 나갔는지 받지 않는다. 세 번째로 짝꿍 정희의 전화번호를 찾아 누르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에 퍽 하는 둔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큰누나가 빨래 방망이를 들고 있다. 방망이 끝에 묻은 벌건 액체는 분명 자신의 혈흔일 터. 철수는 악에 받쳐 소리지른다.
"왜 때려?!"
그러나 오히려 복부에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이 있었으니, 비수같이 날아온 아버지의 재떨이였다. 숨 막혀 캑캑거리는 철수에게 두 가해자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전화기가 네 거니? 빨리빨리 끊지 못해?!"
...이건 1994년의 풍경이지만 1984년의 전경이기도 하고, 1974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는 이런 불편함을 당연스럽게 감수하며 살아왔다.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바로 통화할 수 있는 2004년이라면 도무지 감내하지 못할 삶의 면면이다.
장면 3. 신용을 저버린 나
중학생 때의 일이다. 어느 일요일에 친구와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 놀자고 약속을 했더랬다. 약속 시간은 한 시 반.
6일이 지나 약속 당일이 왔는데, 당시 일정 관리가 뭔지도 모르던 철없던 나는 약속을 까맣게 잊은 채 오락실에서 놀고 있었다.
엄지 손톱이 반듯하게 갈릴 정도로 열심히 격투 게임을 즐긴 후 집에 돌아온 시간은 네 시 삼십 분. 돌아오자마자 친구 하나가 삼십 분에 한 번씩 전화해서 날 찾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차. 그제야 난 약속을 떠올렸고, 동시에 속도 시커멓게 탔다. 튕기듯 집 밖으로 뛰어나와 머리를 때리며 약속 장소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몇 km는 되는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갔는데, 내 인생에서 그렇게 빨리 달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도착해서 약속 장소 시계탑을 확인하니 어언 다섯 시. 당연히 친구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주 죽을 죄를 짓고 만 것이다.
공중전화를 찾아서 녀석 집에 전화를 거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주위를 한 삼십 분 정도 서성거리면서 혹시나 근처에서 놀고 있지는 않을까 동네 오락실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헛수고였고, 결국 그냥 집에 와야만 했다.
밤 늦어서야 겨우 녀석과 통화할 수 있었는데, 성격이 워낙 순한 이 친구는 전혀 화내지 않았고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단다. 재밌는 애 하나 소개시켜준다고 제 친구 하나 데리고 나와 같이 기다렸단다. 세 시간 가까이나.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처했을 친구의 무덤덤한 말투를 들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난 이 녀석에게 잘못을 함과 동시에 이 녀석마저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 얼마나 몹쓸 짓인가.
이후에도 그 친구와는 스무 살 넘어서까지 종종 보며 지냈는데, 그 사건이 있은 후 한 번도 따로 만난 적은 없다. 분명히 내가 신용을 저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 시절 휴대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약속을 놓쳤더라도 바로 전화가 왔을 테고, 조금 늦더라도 달려가 재밌게 놀았을 테다.
내 유년 시절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그날의 일은 지금의 기술이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촌극이었다.
장면 4. 책을 읽으며 너를 기다리던 나
중고등학생 때 주로 약속을 잡던 곳은 대구 중앙로에 위치한 제일서적이라는 대형서점이었다.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이 늦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 때우는 게 이보다 더 쉬운 장소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연락을 도와주는 문명의 이기가 없던 시절, 누군가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올 경우 안절부절 시계 바라보며 애태우거나 밖에서 덜덜 떨면서 군시렁거리기보다 여유 있게 책이라도 보고 있는 게 편했던 거다. 어쩌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더라도 책이 있다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약속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토요일 7시, 제일서적 1층에서 보자”
한 번은 친구가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서점에서 기다리다가 괜찮은 책을 잡아서 한 권을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친구에게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나름 시간을 알차게 보냈기 때문이다. 기억 나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 시절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았을 거다. 그래서 시내 중심가에는 꼭 대형서점이 있고, 어딜 가든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과거 그 많던 서점이 망했거나 쇠락한 것은 꼭 인터넷 서점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라, 휴대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가 없어져서인지도 모른다.
정리. 정보화 사회라 다행이야
잘 기억나지 않는 유치원생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내 국민학생 시절과 중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지금 대학생으로서의 삶의 모습은 같은 사람이 경험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몰라보게 달라졌다.
너무 빠른 시대의 변화를 규탄하는 얘기도 있고 그 시절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지금의 기술이 예전이면 어쩔 수 없이 발생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수, 하릴없는 기다림, 불편한 소통 등을 대부분 해소해주었기에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문제는 정작 그 안에 거할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해결책이 나온 뒤에 '아, 그게 문제였지' 깨닫곤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내가 깨닫지 못했던 여러 문제가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되어 왔고, 지금 내가 느끼지 못한 또 다른 문제도 지금은 상상 못 하는 무언가의 등장으로 어느샌가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 되어 나는 또 이런 글을 쓰겠지. 정보화 사회라 정말 다행이다, 되뇌면서 말이다.
[2004년 12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