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삶이 멈췄습니다

2020년대의 초반 몇 년은 지독한 슬럼프 기간이었습니다. 일을 잘하지 못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계속 바뀌는 업무들을 잘 해내면서 대학원 과정까지 잘 마쳤습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더는 남지 않아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고 여러 방면에서 많이 후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했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회사든 일을 하다 보면 가끔이든 자주든 크고 작은 이벤트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프로젝트 최종 보고라든가, 외국이나 본사에서 높으신 분들이 방문한다든가, 내년 목표와 계획을 발표한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프로젝트성 업무를 주로 하는 나는 더욱 그러하다. 굵직한 이벤트가 잦은데 일주일에 몇 개씩 겹칠 때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간 삶이 멈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죽는다거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이벤트들을 감당하느라 업무 외에 다른 삶은 거의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살고 있다”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야말로 기계적인 나날을 보낸다는 뜻이다.
야근이 이어지고, 주말도 꽉꽉 채워 일하게 된다. 일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눕고, 일 생각을 하면서 잠에서 깬다. 당연히 한동안 철저하게 잘 진행해 오던 자기관리는 엉망이 된다. 업무 스트레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늦은 밤 책을 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취미생활이나 지인들과의 모임도 모두 엉클어진다.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양해를 구하는 일이 빈번해지며 운동 부족, 수면 부족, 휴식 부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기가 일주일씩 밀리기도 하고, 장기적으로 중요한 업무 역시 모두 겨울잠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큰 이벤트가 지나고 나면 피로에 찌든 몸, 두둑해진 뱃살, 거칠어진 피부, 텅 빈 머리와 감정, 주위 사람들을 향한 미안함 및 밀린 가사와 업무들이 아이들 방바닥에 어지러진 장난감들처럼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게 된다.
그걸 수습하는 데에도 며칠, 혹은 몇 주가 걸린다. 혹사한 몸을 쉬게도 해야 하고 ‘한동안 고생했으니까’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고생해서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온 노비에게 그날 저녁부터 매질을 할 대감마님은 없지 않겠는가.
더 큰 문제는, 회사 일은 보통 하나의 이벤트가 끝나면 또 다른 이벤트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수요일에 보고가 끝나서 목요일 하루 숨을 돌리면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큰 미팅을 준비해야 하는 식이다. 이렇게 이벤트가 서로 손을 맞댈 수 있을 정도로 이어지면 삶은 굉장히 오랫동안 호흡을 멈춘다.
이번 주의 내가 딱 이 상태이다. 지난주부터 딱 4일 정도 삶이 멈췄는데, 이벤트가 끝나고 이틀이 지난 지금도 눈을 뜨지 않고 있다.“이제 일어나야지!” 멱살을 잡고 흔들며 소리를 지르지만 소용이 없다.
...잠깐만. 이렇게 문성닷컴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살짝 정신을 차린 건가?
휙 돌아보니 누워 있던 삶은, 황급히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여전히 심정지 상태인 척을 한다.
[2022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