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있어야 빛이 의미가 있고, 그림자를 통해 광원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믿어 왔는데, 나이 들면서 점점 더, 빛은 그냥 빛 자체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 예상한 대로, 나이가 더 든 지금의 저는 더는 결핍을 예찬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결핍이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었다.
젊은 날에는 사서 고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종 시련을 겪으며 인생의 쓴맛도 보고, 돈이든 시간이든 필요한 것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 처해봐야 이를 발판으로 안이 단단해져 인생의 온갖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 주위를 바라보니 이게 정말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크게 방황하지 않고 자란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을 깎아가며 힘들게 성장한 사람들보다 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결핍 속에 자란 사람이 안에 잡혀 있는 근성,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배려심, 문제 해결 능력에 있어 풍족 속에 자란 사람보다 월등히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은 하나같이 밝고 강했다. 항상 주위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나이 들어 마주하는 인생의 온갖 시련들도 잘 해결해 나가더라. 물론 내가 실제 만난 사람들에 한정된 이야기고 이들도 나름의 결핍이 있었을 테니 쉽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믿어왔던 것이 맞나 회의가 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당장 내년에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살아온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대부분 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 결과로 딱히 자랑할 만하지도 않은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올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이 언덕에 오를 수 있는 더 쉬운 길이 굉장히 많고, 이보다 훨씬 더 쉬운 방법으로 더 높고 거대한 산에 오를 수 있음도 보게 되었다. 그 쉬운 길이 결코 비난받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함께 말이다.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자식들의 머리가 굵어졌을 때 아버지로서 나는 어떤 인생의 길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좁은 길을 굳이 택하고 결핍을 이겨내면서 자신과 싸워 성장을 이루는 삶이 낫다고 할 것인가. 최대한 빨리,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인생길에 뿌려진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가며 편안함 속에 머물라고 할 것인가.
평생 내 대답은 항상 전자였다. 문성닷컴의 지난 글들도 침을 튀기며 전자의 삶을 찬양하며 갈구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와 후자 사이에 그려진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아주 어중간하게 말이다.
몇 살 더 먹으면 답을 알게 되려나? 글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왠지 후자로 더 가까이 갈 것만 같다.
[2019년 8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