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일을 거부할 권리

일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가급적 많은 일을 해보고자 합니다만 다른 철학으로 일에 임하는 분들 역시 존중합니다. 회사는 우리를 직급과 연봉이라는 수치로 서열화할 수 있을지 모르나, 각자의 인생이라는 건 그런 단편적인 지표로 가늠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님을 믿습니다.
갑작스레 다음 달에 있을 워크샵을 진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업무적으로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잘 아는 주제이기도 하고, 워크샵 진행은 컨설턴트로서 많이 해본 일이기도 하니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목표와 아젠다를 우선 잡은 후, 참석해야 할 관계자들 리스트를 뽑아 초청 메일을 보냈는데 꼭 와야 하는 부서의 멤버가 참석을 못 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코로나 때문인가 싶어 온라인 참석은 가능하냐고 물으니 그것도 안 되고, 날짜를 바꿔줄까 했더니 그냥 요즘 여력이 없어서 워크샵 같은 업무는 참석을 못 하니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면 팔로우업을 하겠다고, 아주 정중하게 답을 해왔다. 주위에 물어보니 그분은 원래부터 그렇게 일한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기가 하기로 규정되어 있는 일만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
일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쁜 거 이해한다. 요즘 안 바쁜 팀,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가 코로나 때문에 대면 미팅에 오는 것을 꺼릴 수도 있다. 그리고 워크샵을 같은 업무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보다, 정작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워크샵에 있어서는, "여력이 없다"는 관계자보다 훨씬 덜 관련된 사람이다. 진행을 요청받았을 때 "죄송합니다, 요즘 좀..."까지만 말해도 아무 문제 없이 충분히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원래 잡힌 다른 일정들까지 조정하면서 하겠다고 했다. 이번뿐이 아니라 늘 이렇게 일해 왔다. 누가 도와달라면 팔을 걷고 나서고,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본다. 동남아에 있는 동안 내가 그쪽 직원들을 도와주고 싶어 개발한 교육 세션만 40개 가까이 되며, 재무, 인사, 물류, 구매,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서도 손 벌리면 어느 나라든 어느 사업장이든 기꺼이 달려갔다.
물론 이렇게 일한다고 실질적으로 내가 얻는 것은 없다. 성과에 반영되지도 않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그래도 난, 무엇이든 더 해보려고 한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값지다 믿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지난 십수 년간 “요즘 여력이 없어서 못 합니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적어도 내 기억에는 한 번도 없다. 이러니 나와 전혀 다르게 업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회사 생활이라는 것은, 저마다 각자의 가치관을 갖고, 자신만의 전쟁을 하는 것이다. 내 조직의 일원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의 방식에 내가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철학에 따라 일을 하면 되고, 그분도 '일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면 될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회사가 우리 두 사람을 특별히 다르게 대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이런 생각도 오늘로 족하고, 당장은 다음 달 있을 워크숍을 잘 준비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쓰는 게 맞다.
[2020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