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퍼스널 브랜딩 - 뾰족함과 무난함 사이

나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파는 사람이다.
소비자가 가진 가치, 즉 돈과 내가 만들어 낸 제품을 교환하는 마케팅이 지금의 내 일이다.
마케팅 업무를 — 그리고 그전의 전략기획 업무까지 — 수행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사고자 한다는 것이다. 제품이 가진 매력적인 서사를 공유하면, 비슷한 제품이라도 몇 배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고, 몇 배 더 많이 팔 수도 있다. 그런 경우를 숱하게 경험하고 보아왔다.
이렇게 스토리를 입히는 ‘브랜딩’은 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나 같은 직장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직장인 또한 끊임없이 가치를 평가 받고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채용/이직/승진을 포함한 각종 인사발령) 매력적인 서사를 담은 브랜딩이 반드시 필요하다. 회사를 그만두면 순식간에 소멸할 명함 속 회사 이름과 직급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나는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언젠가 친한 동료들에게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대부분 ‘똑똑하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두 가지로 수렴되었다. 얼핏 듣기에는 좋은 말이나, 사실 이는 그냥 "우리 제품 좋아요", "저렴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믿고 쓸 수 있는 무난하고 괜찮은 브랜드일지는 모르나, 아주 뾰족하진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까지 뾰족한 브랜딩을 갖추지 못했을까. 두 가지 이유로 분석한다.
첫째, 직무를 여러 번 바꿔왔다. 브랜딩을 위해서는 한 분야에서 업력을 오래 쌓는 게 중요하다. 업력이 없으면 브랜딩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력이 있으면 훨씬 유리하다. 중공업을 하던 회사가 갑자기 업종을 바꿔 콜라를 팔 수는 있겠지만, 140년 동안 콜라만 만들어 온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회사의 고마운 제안으로 여러 차례 완전히 새로운 직무를 맡아왔고, 덕분에 조직 내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쌓았지만, 점점 더 하나의 전문성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왔다. 자동차 업계에서 ‘푸조’ 정도의 이름값을 쌓았는데, 갑자기 그 브랜드로 TV를 팔게 된 셈이랄까. 푸조가 자동차로서는 훌륭하지만, 85인치 TV를 고가에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마케팅으로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일찍 넘어와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2009년 가을, 난 같은 날 두 가지 커리어 옵션을 회사로부터 제안받았다. 하나는 오퍼레이션 컨설턴트로서 대만에 나가서 일하는 옵션이었고, 하나는 본사로 가서 마케팅을 하는 옵션이었다. 당시 내 상사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후자를 택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컨설팅에 매력을 느낀 난 첫 번째 옵션을 택했다. 덕분에 내 인생에 크나큰 도움이 된 7년 동안의 뜨거운 도전을 해외에서 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케터로서의 전문성 준공을 십수 년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너무 조용했다. 직장 생활은 편의점 매대에서 수많은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과정과 같다. 우리 역시 어떻게든 우리의 커리어를 좌우할 수 있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신중한 성격 탓에 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내 이름 앞에 붙을 수식어는 '똑똑하고 성실한'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족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해서든 톡톡 튀는 매력적인 수식어를 붙이고, 좀 더 큰 목소리로 나를 이야기해야 했다. 꼭 긍정적인 내용일 필요는 없었다. 나의 아픈 실패 이야기나 무모한 시도조차 얼마든지 좋은 수식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직장인의 길에 들어섰다면, “나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순진한 믿음은 접어두고, 우리는 선택받아야 하는 제품일 뿐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들이 무채색일 때 과감히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남들이 정육면체일 때 혼자 원뿔이라도 되어야 한다.
이제 내 커리어는 10년 남짓 남았다. 슬슬 후반부를 준비할 때다. 이제 와서 무엇이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를 조금 더 뾰족하게 빚어보려 한다.
남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그러나 나름의 무게를 실어 나를 이야기하려 한다.
오래된 개인 홈페이지의 리뉴얼 또한, 그 길 위에 있다.
[2025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