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을 쓴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얼굴의 주름을 거스르기 어렵듯, 마음의 노화를 막아내는 것도 쉽지 않네요. 물론, 다 변명일 뿐입니다. (2011년에 연재한 시리즈물이며 우선 4편만 올립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간다. 개중에는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외모와 같은 것들도 있고, 눈으로 보이진 않는 내적인 속성들도 있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후자에 속한다.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상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확인이 가능하기에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나이에 비례하여 사라지는 소중한 것, 바로 ‘용기’다. 신념에 따라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남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매력 말이다.
술 취해 행패 부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족을 내팽개치고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을 용기라 부르지 않는다. 무례하게 행하는 것 또한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남을 속이고 상해를 입히고 재물을 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생각에 용기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신념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손해를 볼 것을 알더라도 자신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어야 한다.
잘못한 것을 당당히 고백하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이들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나이가 들면 우리 안의 용기는 희석되어 간다. 잃을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것들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경력, 재물, 사회적 평판, 체면, 자존심에 손상을 입을까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것을 쌓아온 정치인이나 조직의 리더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어쩌면 이는 단지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몸담고 있는 조직의 잘못된 관행을 보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꿈을 찾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 잘 닦아온 경력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신이 나갔다’ 혹은 ‘멍청하다’라 일컬어진다. 우리가 용기를 잃어가는 것은 이런 사회 구조에서는 외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주로 주름살과 처진 피부, 탄력을 잃은 몸매에서 노화를 감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제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동안이고 20대의 피부와 몸매를 유지한다고 해도, 말과 행동 속에 용기가 담기지 않으면 ‘노화의 향기’가 우러나오게 된다.
반대로 식도 위로 잘 올라오지 않는 사랑한다는 말, 내 잘못이라는 말, 좌절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말,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말과 행동만큼 젊음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홈페이지에 이리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 것 또한 내게는 용기의 행위다. 몇 명 보지도 않을, 나한테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을 글을 쓰느라 몇 시간씩 머리를 싸매는 것은 홈페이지를 처음 열 때에 비해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 이 글처럼 ‘난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박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활자로 남은 글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걸음만큼이라도 생각을 더 하고 글로 토해내며, 내가 다짐한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그만큼의 젊음이 언젠가 내게 원고료로 입금되리라 믿는다. 비록 제법 연체는 될지라도 말이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내 나이 예순에도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 그걸로 사람들이 한 열 살의 노화쯤은 깎아줄지도.
[2011년 7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