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내가, 나에게, 나를 소개한다

작년에도 자기소개서를 썼었는데, 이십대 때나 사십대 때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민망하더군요.
여전히 스스로의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번드르르한 자신을 당차게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20년 전보다 나아진 것은, 이제는 ‘실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오래간만에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끄적여보았다.
어디 보여주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고, 순전히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를 정리해 보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글 쓴 동기를 막론하고 이런 개인적이고 재미없는 글을 나 말고 누가 읽어보겠냐는 생각에 성의 없이 건들거리며 시작하였는데, 글쎄, 어느새 난 작품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정도의 각오로 한 줄 한 줄 깊은 생각을 짜내어 키보드 위에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더랬다.
혼자 보는 자기소개서. 이것은 내가, 나에게, 나를 소개하는 행위다.
그것은 수신자와 발신자, 그리고 대상이 되는 주제의 세 객체가 일치하는 데다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고개 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나 자신을 속여서도, 글을 보는 나 자신을 현혹시켜서도, 글의 주제가 되는 나 자신을 기만해서도 안 되는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기에, 싱크대에서는 씻지 않은 식기들이 쌓여 있고 함부로 벗어던진 옷가지가 방바닥과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매몰차게 외면한 채 주말에 열과 성을 다해 써갈긴 나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세 명의 문성의 뜨거운 회담이었던 셈이다.
성인이 되어 쓴 자기소개서는 2003년에 삼성그룹 인턴십을 지원하면서 쓴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 2004년 가을 취업 시즌에 여섯 편 정도 썼는데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확인한 것은, 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진 것도, 해놓은 것도 없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엄한 사실이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취업에 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다. IMF 시기라 취직이 매우 어렵긴 했으나 다들 우리가 졸업할 때쯤이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고, 교수님마저도 수업 시간에 취업 같은 거 벌써부터 고민하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라 일갈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고 취업 시장은 급격히 좁은 문으로 바뀌었다. 뭔가 낌새를 눈치챈 영리한 친구들은 일찌감치 고시로 빠지거나, 경영동아리, 컨설팅, 인턴, 어학연수 등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기 시작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지 못한 나는, 졸업을 코앞에 둔 시기에도 자기소개서에 적을 게 인턴 경험 하나, 토익 점수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빈털터리 청년에 불과했다. 아르바이트도 동시에 여러 개를 하는 등 나름 생계를 위해 바쁘게 살았고, 한 번뿐인 이십대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취업 시즌에 받아든 자기소개서에는 그런 걸 기록하는 공간은 없었다.
결국 내 자기소개서는 준비 안 된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차별화된 실물을 보여주기보다 용기, 도전, 창의력, 끈기, 긍정적 등의 매우 주관적인 '정신적 강점'을 강조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실속 없는 자기소개서를 덜렁덜렁 흔들어대며 싱글벙글 전쟁터로 걸어나가던 우리가 취업 전선의 기관총 세례에 초반부터 피투성이로 허물어져 내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정신적인 강점은 자기를 소개할 적절한 문구가 아니다. ”저는 매사에 긍정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습니다”는 식의 주장은 “저는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답니다”와 다를 바 없고, ”저는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는 식의 주장은 “제대로 해 본 일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와 진배없다.
이는 처음에 ‘내가 나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강점 따위는 세 명의 문성이 합의에 이르기조차 어려운데 어떻게 남을 설득한다는 말인가.
회사 생활 이제 1년 9개월, 그간 열심히 살긴 했다. 직장에서 사무실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사람이며 자기계발 하나는 주간 계획, 월간 계획, 1년 계획, 3년 계획으로 세분화하여 제대로 관리해 오기도 했다. 아끼는 취미 생활도 많이 접었고, 매일 시간을 아껴 쓰려고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어렵사리 완성한 2006년도판 자기소개서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었다. 내 두 손엔 아직 별 특별할 것이 없기에, 세 명의 내가 합의하지 않는 '정신적 강점'들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지?"라는 질문이 나오기 딱 좋은, 맥아리 없는 줄거리만 길게 나열되어 있다.
좀 더 손에 잡히는 실적이 필요하다. 쓰는 나, 보는 나, 주제가 되는 나는 물론이고, 다른 누가 봐도 고개 끄덕일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
승진이니 이직이니 하는 자기소개서의 실제 용도를 떠나, 내가 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어찌 열심히 일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너 대체 뭐 하면서 일하고 있는데"라는 자문에 우물쭈물 답을 못해서야 어찌 스스로를 바람직한 직장인이라 칭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세 명의 나와의 회담을 마치면서, 나는 몹시도 부끄러웠고, 더욱더 간절해졌다.
[2006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