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제외하면, 문성닷컴에서 가장 길게 쓴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총 8편으로 나누어 연재한 글을 절반 정도 줄인 후 올려봅니다. 인도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발단
오후 3~4시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몸살인가 싶어 퇴근하자마자 약 먹고 바로 잠을 청하였으나 차도는 전혀 없었다. 복통으로 잠을 설치다 보니 어느덧 아침, '오늘 도저히 일 못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7년 동안 병가를 하루만 썼을 정도로 웬만하면 아파도 일하는 성격이지만, 이역만리 인도에서 일하다 죽는다 한들 타지마할 같은 번지르르한 무덤 하나 지어줄 것도 아니니, 냅다 회사에게 전화를 해 ‘암 베리 씩 투데이!’를 외쳐주었다. 중요한 미팅이나 발표가 없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몸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졌으니, 배는 계속 당구 큐대로 배꼽 옆을 찍어대는 듯 아팠고 머리는 냄비 하나 올리면 바로 보글보글 끓여댈 수 있을 것처럼 뜨거웠다. 그러면서 몸은 어찌나 으슬으슬하게 춥고 치아까지 시리든지, 이거야말로 몸살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는 완전한 오판이었다.
전개
휴가를 내고 한나절을 버텼지만 저녁이 되어도 도무지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타이레놀, 정로환 등 한국에서 가져온 약들도 한류가 인도에는 영 먹히지 않듯 그다지 기를 펴지 못하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니 상황 판단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건 분명 식중독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 리셉션 데스크에 내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푸드 포이즈닝인 것 같은데 병원 소개시켜 줄 수 있느냐, 그랬더니 매니저쯤 되는 양복 입은 아저씨가 걱정 말라고, 좋은 병원 소개시켜 줄 것이고, 차까지 세팅해 주겠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손쉽게 치료 잘 받은 후 빵빠레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사귀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누차 말했잖은가. 인도에서는 뭐 하나 쉬운 게 없다고.
차가 준비됐다. 호텔 이름이 문짝에 적힌 전용 차량이었다. 기사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보아하니 병원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매니저는 간단히 기사에게 위치 설명을 한 뒤 내게 가까운 ‘닥터 사하라 클리닉’으로 갈 거라고 했다. 친절한 조치에 감사를 표하면서 차창에 머리를 기댔고, 차는 곧 출발했다.
위기
10분 정도 뒤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니, 도착했다고 기사가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가리키는 건물을 바라보니 걸린 하늘색 간판은 ‘닥터 사하라 클리닉’이 아니라 ‘스파클 덴탈 클리닉’이었다. 아니, 저건 치과아니냐, 라고 말했더니 기사가 어설픈 영어로 자기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란다. 어디 숨겨진 간판이 있나보다 하는 생각과 함께 건물에 들어가 봤지만 치과밖에 없었다.
차로 돌아오니 기사는 벌써 취침 모드였다. 차 문을 두드려 깨웠다. 여보쇼. 저긴 치과잖아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차에서 내려 덴탈 클리닉 건물로 앞장서서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구글맵으로 다시 찾은 스파클 덴탈 클리닉
잠시 뒤, 우리는 스파클 덴탈 클리닉 앞에 서 있었다. 난 내 치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치과라고요.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기어코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결과는 뻔했다. 그는 금세 뛰쳐나왔고 우리는 차로 돌아갔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벌써 6시 40분. 안 그래도 토요일, 병원들이 문 닫고도 남을 시간이다.
스파클 덴탈 클리닉을 나온 후 기사는 멀리 시내 중심가로 차를 몰아갔다. 난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아이처럼 차 뒷자리에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차창 밖의 불빛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15분 정도 뒤 차는 간판이 인도어로 되어 있어 도무지 뭔 말인지 읽을 순 없지만 빨간 십자가가 붙어 있어 대충 병원이겠거니 여겨지는 오래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기사가 먼저 앞장서서 병원 문 앞까지 가더니 내게 들어가 보라고 했다.
너무 늦어서인지 환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접수대에서 여든 살은 넘어 보이는 인도 할머니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가서 '치료 좀 받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내가 나라라도 팔아먹은 양, 밭이랑 같은 이마의 주름을 더 구기며 마라티어로 내게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몸만 안 아팠다면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 다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나왔겠지만, 여기서 회군할 수는 없는 일. 난 금식으로 앙상해진 팔로 팔짱을 끼며 따지듯이 그녀에게 외쳤다.
“쏘리?”
못 알아듣겠다는 소리다. 이런 대립을 예상이나 했는지 기사 아저씨가 뒤에서 갑자기 등장하여 아주머니와 한참 얘기하더니, 내게 병원 측의 공식 의사를 무려 영어로 이렇게 대변해 주었다.
“에브리 닥터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 오퍼레이션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 써리미닛 웨이팅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
의사들이 수술에 들어가서 지금 당장 진료를 받을 순 없으니 30분만 기다려라라는 내용보다 내가 이따위 영어를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분했다.
다른 대안이 없기에 우리나라 고속도로 대합실에서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절반 정도는 등받이가 부서져 있었고, 병원 전체의 조명도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 수준이었다. 허나 이런 곳에서라도 치료받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마음을 다스리며 수술을 마치고 돌아올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한 10분 지나니 문득 불안감이 돋아났다. ‘이 나라에서 30분이 정말 30분인 적이 있었던가. 아아. 이거 자칫하면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는데?’
이런 내 마음을 어찌 짐작했는지 병원 문가에서 누가 날 ‘써 써 (선생님)’ 하며 부른다.
기사 아저씨다. 따라 나오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래와 같은 고급 영어로 이유를 잘 설명해 주었다.
“써리미닛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 투 롱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 어나더 하스피털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
딱딱 이해하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그새 어떻게 알아봤는지 도보로 2~3분 거리의 새로운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치료를 받진 못했고, 왔던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혹시 인도에서는 식중독 환자를 병이 다 나을 때까지 걷고 또 걷게 해서 낫게 하는 민간요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이를 혹시 ‘닥터 사하라’ 요법이라 칭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뒤를 이었다.
기사는 다시 차를 몰고 밖 큰 도로로 나갔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왜 저러냐 싶어 지켜보고 있자니 이 아저씨,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기 혹시 근처에 병원 없어요 하고 묻는 투다. 세 명째가 되자 참다못해 기사에게 말했다. 됐으니 호텔로 돌아가자고. 이렇게 길거리에서 밤새도록 고고학 탐사하며 돌아다닐 바엔 호텔로 돌아가는 게 낫다 싶었던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들은 기사는 뭐라 뭐라 인도말로 답하더니 핸들을 꺾어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텔을 목전에 둔 사거리에서 이 아저씨, 좌회전을 해야 되는데 우회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100m 정도 가더니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는 저기로 가보라고 했다.
눈을 들어 간판을 보니 영어로 ‘닥터 사하라 클리닉’이라고 되어 있었다.
절정
한동안, 정말 할 말을 잃고 멍해진 정신으로 간판만 하염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대체 이거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이 병원을 호텔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지척에 두고 지금까지 뭐 때문에 한 시간이 넘게 헤맸단 말인지, 화가 나기보다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떡 벌리고 기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심지도 굳건한 인도 아저씨는 웃음기 하나 없는 사무적인 얼굴로 병원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실수한 것도 아닌, 그저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표정, 그뿐이었다.
어찌 된 노릇인지 따져볼까 하다가 어차피 되지도 않는 대화 시도해서 뭐 하겠냐 그냥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려 병원에 들어갔다.
호텔에서 사하라 클리닉까지는 정말 5분 거리다
동네 구멍가게 정도의 작은 병원이었다. 세 걸음이면 끝날 아주 좁은 로비와 오른쪽 방,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깨끗하게 칠해진 하얀 벽과 이를 밝히는 환한 조명 때문에 그나마 병원 같은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조심스레 익스큐즈 미를 읊으며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니, 느긋하게 자리에 기대어 앉은 초록색 사리(인도 전통의상)를 입은 40대 중반쯤 되는 인도 아주머니가 날 예의 인도식으로 아래위를 훑어보며 반겨줬다.
영어가 자연스러워서 안심이 되었지만, 진료실이면 흔히 걸려 있는 의사 면허증이라든가 인증서, 졸업장 같은 게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의학 서적 한 권 보이지 않아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상관 없다. 얼마나 힘들게 찾아온 사하라 클리닉이냔 말이다.
일단 의사 선생님의 상황 파악을 도와드리기 위해 업무차 여기서 지내고 있는 외국인이라고 먼저 운을 뗐다. 그랬더니 그냥 끄덕끄덕하고 말 뿐이다. 대만하고 싱가포르에서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여권 보여 달라, 비자도 보여 달라, 현재 주소를 대라, 보험은 있냐, 여기 이 문서의 123가지 항목을 다 채워라, 아는 한국 노래 불러봐라, 옥상에 물 항아리가 열두 개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파티에서 돌아오기 전 물을 다 채워 놓으라는 등 요구 사항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여기는 외국인이고 뭐시기고 아무런 신상 확인 절차가 없다.
이름은 문성, 국적은 한국, 나이는 서른둘이라 말하니 그냥 백지 오른쪽 구석에 받아 적고는 아무런 질문도, 대꾸도 없다. 이거 이름은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 쏘제이고 북한에서 왔으며 핵무기 배달하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해도 아무 관심이 없었을 듯한 반응이다.
허나 식중독에 걸린 것 같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고생이 잊힐 만큼 정성스러운 진단을 개시해 주었으니, 길이로 보나 형태로 보나 필시 겨드랑이용으로 보이는 체온계를 소독도 하지 않고 무려 입에 5분 동안이나 물려 놓기도 하고, 뜬금없이 팔뚝의 혈압을 재기도 했으며, 배에 청진기를 대보더니 여기저기 쿡쿡 눌러보기까지 했다. 그런 후 진단 결과를 말하는데, 배의 염증이 심한 상태고 이 정도까지 진행되었으면 먹는 약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테니 링거를 좀 맞고 주사도 놔주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내일 아침이면 깨끗하게 낫고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라는 호언장담까지 보너스로 남겨주었다. 정말 'Everything will be fine tomorrow'라고 했는데, 내 살다가 이리 시원하게 예측을 때려주는 의사는 일찌감치 보지 못했다.
식중독인데도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약 사항도 없다. '치료받은 후 집에 가서 좀 잘 먹어두라'가 전부다. 와 이런 의사 너무 좋다. 치료만 제대로 해준다면 말이다.
그리고는 따라오라고 해서 아까 그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환자용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다른 환자는 없었다. 날더러 거기 누우라고 하더니 혼자서 느긋하게 링거액을 조제했다. 간호사도 없고 간호조무사도 없다. 혼자 다 하는 모양이다.
링거를 놓은 후 아주머니 의사는 느긋하게 아래층으로 사라지고 대신 전형적인 인도식으로 생긴 콧수염 아저씨가 갑작스레 등장했다. 인도 체류 경험상, 배가 빵빵하게 부어오른 것으로 봐서는 이분도 의사 선생님이 확실해 보였다. 그는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 선풍기를 주먹으로 몇 번 가격해 어떻게든 돌게끔 만들어놓더니 20인치짜리 브라운관 TV를 켜고는 내게 물었다.
‘선호하는 채널이 있느냐’
MBC와 온게임넷을 선호한다고 하려다 링거액에 갠지스강 물이라도 섞을 것 같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아저씨 인도 문화를 외국인에게 전파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서인지 채널을 한 30년 전에 만들어졌을 법한 오래된 인도 영화가 나오는 곳으로 돌린 후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엘비스 프레슬리 머리를 한 느끼한 인도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인도 영화답게 쉴 새 없이 노래와 집단 댄스가 흘러나왔다. 그냥 사랑하면 안 되나, 왜 고백하고, 받아주고, 기뻐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저렇게 춤을 춰야 하는 걸까.
정신이 멍해지는 듯한 영화를 보며 한동안을 누워 있었는데 아래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타타타타 계단을 올라왔다. 얼굴을 돌려 살펴보니 예의 그 호텔 기사 아저씨다.
이 아저씨, 누워 있는 나를 확인하더니 아래층에다 대고 또 뭐라 뭐라 한다. 아니 우리 귀한 손님을 이런 하찮은 침대에 눕혀놓고 저 따위 멜로 영화나 틀어놓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요! 라고 말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럴 리 없지.
아까의 느긋한 여자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덜 느긋하게 올라와 내 링거액 디스펜서 쪽을 좀 만졌고, 갑자기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던 링거액이 갑자기 소나기처럼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뚜욱 ---- 뚜욱 ---- 뚜욱 ---- 뚜욱 하고 떨어지던 약액이 뚝뚝뚝뚝뚝뚝뚝뚝뚝뚝뚝뚝뚝뚝 - 이렇게 떨어지는 걸로 바뀌었다는 거다.
분명 기사 아저씨의 농간이다. 물론 저녁 먹을 시간에 밖에서 기다리게 한 것은 미안한 노릇이나 일이 이렇게 늦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신 탓 아니냔 말이다.
이리 생각하는 동안 차라리 내가 빨대로 빨아 먹어도 저 속도는 안 나겠다 싶을 정도의 놀라운 스피드로 링거통은 깡그리 비워졌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사는 마지막 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서둘러 주삿바늘을 뽑았다.
링거액을 맞은, 아니 몸으로 들이마신 나는 간만에 찾아온 포만감에 기분 나빠하며 침상에서 억지로 일어났다.
결말
좀 뜬금없는 소리긴 하지만 난 성격이 4월의 저수지 물풀처럼 부드러워 남에게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것을 무척 거북살스러워한다. 그래서인지 불만이 있을 때마다 쉽게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 예컨대 식당에서 음식이 맛이 없으면 음식을 새로 해서 가져오라고 하거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주인장까지 불러와서 호통을 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나는 평생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냐고? 호텔 기사 아저씨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병원 이야기부터 마무리를 짓자.
링거를 들이켜 마신 후 느긋한 의사 선생님을 따라 아까의 진료실로 갔더니 처방전과 영수증을 내민다. 영수증을 살피니 무려 2,400루피 - 한국 돈으로 6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하루에 3~4천 원 겨우 버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인도에서는 진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긴 한데,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편, 영수증 오른쪽 상단에는 병원 이름과 함께 두 명의 의사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둘 다 닥터 사하라였다. 이 느긋한 아주머니와 배 나온 아저씨는 부부 의사였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사 아저씨가 쫓아오더니 처방전을 받아 들고는 방자가 이몽룡 모시는 것처럼 굽실거리며 근처 약국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제법 다른 태도였다.
게다가 약국에 가서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약사에게 처방전을 건네고 약이 나오자 영수증도 우겨서 받아냈으며 약사에게 처방전과 하나씩 대조해서 설명해 보라고 시키기까지 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바로 그 때, 등 뒤에서 '미스터 문'이라고 나지막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날 보고 하는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호텔에서 자주 마주친 낯익은 매니저 한 명이 서 있었다. 아까 병원을 안내해 준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기사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고 치료는 잘 받았는지 걱정되어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받은 약을 손수 사하라 병원까지 들고 가더니 사하라 아줌마 앞에 쏟아붓고는 확인해달라고 하고 더불어 이 사람 괜찮겠느냐고 보호자스러운 질문까지 영어로 던지는 것이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대접이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 하면 조금 주저할 만도 한데 이 느긋한 아주머니 의사 선생님은 ‘문제없다. 내일 아침이면 다 나을 것이다’라는 역시나의 당당한 영어 멘트로 대꾸를 해주었다. 이모저모로 마음에 드는 병원이다. 내일까지 병이 낫기만 하면 내 인생의 명의 대열에 올려주리라 마음먹었다.
매니저는 다른 기사가 운전하는 호텔 차량을 타고 왔는데 나와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들어보니 약간의 소동이 일어난 듯 했다. 회사에서 내 상황이 궁금해서 호텔에 문의를 했는데 내가 병원에 누워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로 몇 명이 호텔에 오고 있는 중이고, 호텔에서도 윗선까지 보고가 되어 자기가 직접 찾아오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아프면 주위 사람 여럿 고생시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아프기 싫어하는 거다.
아무튼 그렇게 기사 아저씨와 매니저와 셋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한 억울한 고생이 떠올랐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왜 난 병원을 네 개나 돌고 돌아서 겨우 치료를 받은 것일까.
지금은 말도 통하는 매니저도 있으니 한 번 따져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키지가 않았다. 앞에서 말했던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비록 길을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치료는 제대로 받은 것 같고, 나름 기사도 토요일 저녁에 나 때문에 몇 시간을 썼지 않은가. 그저 매니저 말을 잘못 알아들은 좀 모자란 직원일 수도 있는데 괜히 내 궁금증이나 짜증을 해소하자고 어쩌다 한 번 실수를 했을지도 모를 기사 아저씨를 어렵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고용도 불안정한 인도 아닌가.
생각이 이에 이르니 도저히 매니저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거나 따질 수 없었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호텔에 도착한 후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 아저씨에게 팁까지 제법 쥐어 주었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인도에서는 별별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혼자만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다. 원래 당연히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 넘기고 웃어 넘기면 된다. 그게 이 특이한 나라 인도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그래서 식중독은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다음날, 정말 신기하게도 다 나았다.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고 강렬한 인도 음식을 마구 먹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회복했다. 사하라 클리닉 덕분이다.
[2011년 11월, 여러 날에 거쳐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