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삼자 토론 - 가치를 논합니다

2000년대 중후반의 저는 어떤 주제를 보면 자꾸 답을 내리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내적으로 치열한 토론도 거듭했고요.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였을까요.
지금은요? 문성#4가 되어 아래 토론을 재밌게 보고만 있답니다.
[문성#1]
집에서 콘푸레이크 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가치관에 따라 살게끔 되어 있다" "사람은 가치관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은 두 가지 명제 중에 뭐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성#2] 저는 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그 가치관에 맞게 살게 됩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갖는 삶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정직함이나 정의로움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런 사람들이 불의를 목격했을 때 어디 고민을 합니까? 자기도 모르게 나서서 바로 잡으려 하는 게 그 사람들 아닙니까. 이렇듯 우리는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맞게 삶의 방향이 잡히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문성#3] 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각각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선생님이나 저나 비슷한 견지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 가치관대로 사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환경이 그렇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죠.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을 예로 드셨죠? 그런데 그 사람이 어디 늘 즐거울 수 있답니까? 회사생활이나 부부 생활이나, 자식들 키우는 것까지, 인생살이 만만한 게 없잖아요. 즉,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 즐거움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면서 밝은 심정을 유지한다거나 각종 취미생활 등을 통해 쾌락을 만끽한다거나 해서 말이죠.
[문성#2] 허허. 재밌는 주장을 하시는군요. 그럼 사람을 죽여 놓고 아무렇지 않아하는 살인범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당연하게 보는, 그런 잔혹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월간 계획, 일간 계획이라도 짜면서 버둥거렸다는 말씀이신데, 제가 보기에 그건 틀렸다는 겁니다. 그 범죄자들은 자기 가치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저 나아갔을 뿐입니다. 가치관이 삶을 이끄는 거란 말입니다.
[문성#3] 왠지 편협한 말씀 같은데요. 한 사람의 행동은 하나의 간단한 가치관의 기술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행동에는 여러 동인(動因)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최진실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악플러들을 생각해봅시다. 그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악독한 댓글을 달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말씀하셨듯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라는 가치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죠. 그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입니다. 그들은 인터넷에 댓글을 달면서 쾌락과 같은 자기의 가치를 추구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도덕성이나 사회성 같은 다른 가치의 부재로 인해 전혀 제약되지 못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쪽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인의 가치를 잘못된 방식으로 충족시키려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니, 결국 제 주장과 충돌하지 않아요. 그리고 사실 이런 논쟁에 범죄자 얘기 들이대는 것 자체가 조금 오버라고 생각되는데요.
[문성#2] 뭐라고요? 오버라고요? 아니, 당신 지금……
[문성#1] 자자. 두 분 다 그만하시죠. 글 더 길어지면 읽는 사람들 마우스 휠 굴러가는 소리 진동하겠습니다.
제가 정리를 좀 해보자면, 문제는 가치관이 우리의 삶을 끌어가는 동력인가, 아니면 우리가 보고 살아야 할 목적지인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가치관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네 삶을 이끌어 주기도 하며 또 다르게 보면 우리가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죠. 제 말은, 두 분 다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씀 듣다가, 아니 사실은 콘푸레이크 한 그릇 더 말아먹다가 나름 내린 결론인데, 한 번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가치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입니다. 굳이 명명하자면, 하나는 자연스레 우리네 삶에 배어들어와 이를 통제하는 ‘지배가치관’으로, 다른 하나는 쉽게 획득할 수 없기에 노력해서 가져야 할 ‘목표가치관’이라고 칭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성직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신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그 가치관에 부합하게 살지는 못하고 있어요. 이때 그의 가치관은 ‘목표가치관’이에요. 그리고 그분이 오랜 고행이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통해 그 가치관대로 사는 데 성공했다고 합시다. 굳이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삶 자체가 신의 섭리에 부합하게 되었다고 말이죠. 그렇게 되면 한때는 ‘목표가치관’이었던 것이 ‘지배가치관’으로 위치를 바꿔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어때요, 설명이 제법 괜찮죠? 이런 이론이라면 두 분이 든 여러 가지 사례들에 대한 설명도 가능한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내용을 가지고 가끔씩 얘기해 볼까 합니다. 사실 뒤따라 떠오른 생각들이 몇 개 더 있는데 말이 너무 길면 재미없으니 오늘은 이만 줄이고요. 저는 콘푸레이크 설거지하러 가보겠습니다.
[문성#2, 문성#3] 아니, 우리 말은 듣지도 않고?
[2008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