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인생은 참 답답합니다. 하지만 30년 전 이 일기를 썼을 때의 저와, 20년 전 아래 글을 썼을 때의 제가 뒤에서 쳐다보고 있으니 대충 살 수 없네요. 오늘도 그때처럼, 제 걸음으로 걸어갑니다.
<1995년 1월 4일의 일기>
답답하다. 너무도 답답하다.
내 꿈은 계속 날아가고자 하나
나를 가둔 이 검은 틀은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오히려 도려내고 상처 입혔다.
나는 결국 주저앉아 울어버렸지만,
그 눈물조차도 나를 괴롭혔다.
꿈은 몇 번을 꿈틀대다가 사그라져,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후략)
고향집 내 방에는 의자 위에 올라가야 겨우 손이 닿는 키높은 책장들이 몇 서 있고 그 머리 위에는 빨간색의 긴 박스 하나가 놓여있다.
어머니가 올려 놓으셨다는데 대체 무슨 힘으로 하셨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아주 무거운 녀석, 내 일기장은 그 안에 보관되어 있다.
집에 내려가 침대에 큰 대자로 누우면 그 박스녀석이 정면에 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게 되고, 가끔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꺼내 보기도 하는데, 재미있지는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건조한 일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도 재미지만, 특히 중고등학교 때 일기장에는 웬만해선 손을 대지 않는다.
그 때의 일기장을 펼치면 그 곳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어둡고 우울한 어린 모습의 내가 방 한구석에 무릎을 껴안고 앉아 슬픈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녀석을 마주하는 것은 못내 부담스러운 일이다.
1995년 1월 4일에 왜 저렇게 괴로워했는지는 저 날은커녕 앞뒤의 일기에서도 명확한 이유는 적혀있지 않다.
여러가지로 참고 있던 것이 어떤 계기로 인해 펑 터져버린 것으로 보여지는데 꿈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으로 봐서 성적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되긴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걸로 힘들어했나 싶을 정도의 문제들, 예컨대 기말고사나 모의고사 성적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것은, 그 때의 나에게 있어 그러한 작은 일들이 하늘이 갈라지고 인생이 막 내릴 듯한 위협과 절망으로 다가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춘기였을 테지만, 그걸 배제하더라도 당시의 내게 세상은 무겁고 힘들고 불안했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이십대 중반을 넘어선 적지 않은 나이라고는 하나 십 년 뒤 이십 년 뒤의 나의 눈에는 분명 어린 녀석일 테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직장이나 진로, 사람, 생활에 대한 고민 역시 그 나이쯤 되어서 보면 별 거 아닌 일일 것이다.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된 난, 이 홈페이지나 혹은 지금도 악필로 끄적이고 있는 일기를 통해 이십대의 나를 보며 마치 지금의 나처럼 느끼고 생각하겠지.
여전히 세상은 내게 무겁고 힘들고 불안하다. 사람은 나이 먹어감에 따라 한층 강해지고 경험 많아지고 무덤덤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에 딱 비례해서 세상 역시 더 어려운 시련과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므로 아마 일흔 살의 일기에도 난 같은 양의 한숨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높아져 가는 허들들 때문에 인생이라는 트랙을 달리는 것은 여전히 숨 가쁘기만 하다. 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십 년 후에도 수없이 걸려 넘어지고 부딪혀 상처 받고 괴로워할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생전 처음 당해보는 험로에 입이 바싹 마르고, 싸우고 분노하고 이불 덮어쓰고 소리 지르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술에 취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사는 것일 테다. 인생일 게다. 그런 장애물들을 넘어서는 것에 가슴 벅참을 느끼고 비록 넘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넘어졌어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서 내 갈 길을 가는 것. 그러다가 가끔씩 이렇게 지난 길들을 돌아보며 그 땐 그랬었지 미소 한 번 얼굴에 한 일자로 그어보는 것이 조물주께서 만들어 놓으신 인생의 재미가 아닐까.
나이 먹음에 따라 점점 더 사는 게 쉬워지기만 하면, 그거 좀 재미없지 않겠냐고. 무슨 맛으로 끝까지 달릴 수 있으랴.
그러니 방년 스물일곱의 문성, 그저 열심히 달릴 뿐이다.
저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십 년 전 땅이 꺼져라 한숨 내쉬던 까까머리 여드름 투성이의 내가 보고 있으니까,
저 앞에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보고 있는 십년 뒤 이십 년 뒤 나잇살 먹은 중년의 내가 보고 있으니까.
[1995년 1월 4일/2006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