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이 친구는 이후 저에게 다시는 상담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다행히도 지금의 저는 2019년의 저보다는 많은 면에서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생을 만나 상담을 해줬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잘 되지 않았다. 너무 엉망이라 새해를 맞이하기 전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옛날에도 상담을 많이 해줬고 이번에도 어떤 문제가 있어 나에게서 답을 얻기를 기대했다가, 필요한 시기가 살짝 지나서인지 좀 닫힌 마음으로 나온 동생이었다. "아, 그때 문제가 좀 있긴 했어요. 그랬는데..." 하는 상황.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나의 시도는 그의 마음을 열지 못했고 마음의 변죽을 울릴 뿐이었다. 결국 그 자리는 수박 겉핥기 같은 얘기만 하다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터지는 회사 일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째를 돌보느라 이마 끝부터 턱 끝까지 피로에 절어 있는 데다가 곧 있을 이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최근에는 읽은 책도 줄어들었고 글 쓰는 횟수도 줄어 생각의 깊이까지 얕아져 있으니, 도무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어색하게 끝을 맺었고, 헤어지면서 이 친구가 한동안 다시 연락하지 않으리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삶에 찌든 선배 중 하나라면 굳이 시간을 내 나를 찾아올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의 삶에 작게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자는 것이 10년 전 이십 대 후반에 정한 내 삶의 사명이다. 그를 위해 열심히 살던 적도 있긴 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그와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하루에 나 자신을 위한 단 한 시간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지금 내 모습이 그다지 멋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거울 속 초췌해진 몰골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늘 내 앞에 앉아 있던 후배의 무표정한 얼굴은 꽤나 아프게 나를 찔렀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를 마주 봐야 문제를 깨닫고, 각오를 다지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다시 좋은 내가 될 때까지 오늘 같은 날은 또 올 것이다.
“됐어. 신경 쓰지 말자. 내가 더 좋은 내가 되면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2019년 12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