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지 12년 뒤, 저는 대학원생으로 같은 학교, 같은 캠퍼스에 돌아가서 스무 살의 저와, 서른 살의 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요.
대학에 입학한 지 딱 10년이 되는 2008년 3월, 오래간만에 다시 학교를 찾게 되었다.
반겨주는 사람은 물론 없었지만 여유롭게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름의 홈커밍데이를 기념할 수 있었다.
주말인지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따라서 신입생들이 우글거리는 분주한 풍경 속에 나를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간간히 마주친 누가 봐도 갓 고등학생 티를 벗은 학생들은, 10년 전의 나보다는 꾸민 테가 나긴 했지만 여전히 풋내가 물씬 나는 영락없이 스무살, 영락없는 그 때의 나의 모습이었다.
자연스레 입학 후 3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 서울에 갓 올라와 아는 사람도 없고 기숙사 룸메와는 아직 머쓱하고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었던지라 동문 친구들 몇이랑 학교 투어를 감행했던 기억이 났다.
대략 3시간이 넘게 걸렸을 만큼 만만찮은 여정이었는데 정문을 지나 경영대학, 공과대학, 사회과학대, 음미대를 모조리 짚은 후 기숙사로 돌아와 부어오른 종아리를 두드리며 풀썩 쓰러진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10년 뒤 우연찮게도 역시나 3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 똑같은 투어를 하게 된 것이다.
무수히 다녔던 강의동들,수백 번 밥 먹었던 식당들, 공부하느라 숙제하느라 밤새우기 일쑤였던 도서관과 전산실 등…이런 저런 추억이 묻은 곳들을 지날 때마다 겨울잠을 자고 있던 묵은 기억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어 너 오래간만이다,
싱긋 웃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길을 걸으며 98년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콘택트 렌즈를 쓰기 전이라 두꺼운 안경을 끼고, 나름 멋 부린다고 산 반짝거리는 은색 백팩을 메고 캠퍼스를 발발 돌아다니던 내가, 투명하지만 분명한 윤곽을 그리며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그간,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고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려했던, 어리고 촌스러웠으며 세상 물정 모르고 모든 게 미숙했던 스무 살의 나.
이후 10년을 용케 잘 버텨왔구나.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여러 일들을 제법 잘 통과했구나.
갑자기 난 녀석이 너무도 기특해서 그냥 아무 말 없이 등짝을 두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록 10년의 세월은 공식적으로 학교 4년, 휴학 0.5년, 군대 2.5년, 회사 3년으로 간단하게 계산되어 버리고
학점 얼마, 군필, 토익 몇 점, 몇 개의 자격증, 지금의 연봉으로 잔인하게 정산되어 버렸지만
계산되고 정산될 수 없는 무언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는 구태한 진리를 경외 속에 깨닫게 되었다.
“아. 네! 지금 막 서른 살의 문성이 스무 살의 문성으로부터 훌륭히 바통을 넘겨 받았습니다.”
혹여 10년 뒤, 다시 이 캠퍼스에 서게 된다면 그 때는 둘이 아닌, 여전히 촌스럽고 세상 물정 모르며 모든 게 미숙한 서른 살의 나까지 셋이서 함께 걸으며 지난 10년과 지난 20년을 함께 회상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학생회관 벽에 기대서서, 마흔 살의 나이 값을 못하고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2008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