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 정도 도전은 어디 가서 얘기하지도 못할 수준이지만 제게는 꽤나 힘 있는 '청춘의 알리바이'가 되어 준, 대전의 자취방에서 경북 영천의 본가까지 미니벨로 자전거로 달려갔던 이야기입니다.
1장. 당일. 비를 예감하면서 출발
2007년 9월 21일 오전 5시 15분, 가방을 줄줄이 달아매어 한껏 무거워진 자전거 '샴푸'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새벽 하늘은 바늘로 콕 찌르면 금세라도 한바탕 때려 부술 양 먹구름으로 두껍게 덮여 있었다. 전날부터 거듭 확인한 일기예보는 입을 모아 '오전에 비, 오후에 갬'을 외치고 있었고 공기는 이미 비 내음에 물씬 적셔져 있었지만 별로 망설여지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당장은 달릴 수 있고, 또 설혹 비가 온다 한들 오후에 갠다지 않는가. 나는 첫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자 출발이다.
바람이 몹시도 세게 불었다
2장. 이 여정의 장애물들
전날 밤, 자리에 누우며 내 여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나열해 보았다. 우천 예고, 어제부터 시작된 신경성 위염, 3일 전부터 시작된 왼쪽 대퇴부 근육통과 오른 무릎의 통증, 일반 자전거보다 작은 바퀴와 낮은 기어 단수. 학교에서 강의실도 잘 못 찾는 심각한 방향치, 평소에 유산소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 저질 체력 등 10개 이상 이어지는 걱정의 고리를 억지로 끊으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 스스로 갖은 장애물을 자아낸 후 그것들을 곱씹으며 이래서야 실패할 수밖에 없잖아 하는 게 꼴사납고 우스웠다. 왜 성공의 이유가 아니라 실패의 이유만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다못해 내가 랜스 암스트롱 버금가는 절정의 체력에 수천 만원짜리 은나노 자전거를 보유했으며 GPS로 무궁화 위성과 통신한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 마음을 잘 다져먹지 않는다면 장애들은 역시나 꽃처럼 피어나고 변명들은 덩굴처럼 무성해질 것이다.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패의 이유 따위, 생각하지도 말자. 어차피 성공할 거니까.
전날 밤 정리했던 짐들. 책은 왜 넣었던 걸까
3장. 궤도에 오르다
쉐쉐쉐 쉐쉐쉐. 땅을 훑고 지나가는 꺼림칙한 바람 소리를 헤치며 신탄진 기차역을 지나니 자전거 도로는커녕 인도까지 사라져, 차도에서 자동차들과의 실랑이를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서 생각했던 장애물들이 실제로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으니, 나무를 휘게 만들 정도로 강한 바람에 고작 몇 번의 오르막길에서 체력이 크게 소모되었고, 방향치 문성은 초장부터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서서히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두터운 구름이 아스라히 깨지고 그 틈새로 빛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래서일까? 맞바람은 어느새 땀을 식혀주는 꽃바람으로 변했고 초반에 긴장했던 근육은 자기 힘을 찾아가며 페달에 힘이 실렸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대기권을 뚫고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인공위성처럼 드디어 나도 내 궤도를 찾은 것일까.
그제야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귀에 꼽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들, 등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바람을 갈랐다. 그러나 여정은 이제 아직 초반부였다.
구름이 걷히던 순간의 감동이란
4장. 어리석음
긍정의 힘도 좋고 밝고 낙관적인 사고도 좋지만 물러설 때는 물러서야 한다. 무모한 도전은 만용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겁도 없이 대전에서 옥천 가는 길에 즐비한 오르막길에 무릎 힘만으로 도전했다. 자전거 기어 단수가 낮고 짐이 많기에 페달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저기까지 내가 꿋꿋하게 올라가지 못하고 자전거를 끌고 가거나 쉬었다 가는 것은 마치 낙오자라도 되는 양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그러다가, 출발 4시간 30분 만에 양쪽 무릎이 우는 소리를 냈다. 아직 3분의 1 정도 밖에 가지 않았는데,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두 무릎이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이 때 아프기 시작한 무릎은 평속 25km로 달리던 날 평속 15km 이하의 굼벵이로 만들어버려 전체적인 일정이 크게 늦춰지는 결과를 낳았다.
"완전 바보짓 했네."
결국 국도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주물러대며 혼자 중얼거리는 내 옆을 자동차들은 무심히도 휙휙 잘도 지나치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에서 무릎이 나갔다
5장. 덤프트럭들과 다정히
무릎의 망가짐으로 인해 기세가 완전히 꺾여버렸는데, 물통까지 실수로 쏟아버려 갈증과도 씨름해야 했다. 거기에 옥천에서 왜관으로 향하는 국도는 애초에도 2차선의 좁디좁은 길인데 도로 공사까지 진행하면서 극도로 살벌한 길로 변모해 있었다. 덤프트럭 같은 대형 차량은 평소에 차를 타거나 길을 걷다 마주쳐도 위험이 느껴지는데 이들과 몇 시간이나 차선을 공유하며 나란히 달려야 되니,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가 한 대 한 대 귀 옆을 지나갈 때마다 내 자전거는 휘청휘청 몹시도 흔들렸다.
왜관 시 인근이 되어서야 길은 겨우 넓어졌지만 이미 하늘은 어두워진 후였고, 야간 국도 주행은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시내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원래 당일 내에 영천집에 닿는 것이 목표였지만, 무릎에 이상이 생긴 이상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역 주위를 몇 바퀴 돌아 하룻밤 2만 5천원 하는 허름한 여관방 하나를 잡았고, 몸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고 빨갛게 탄 피부 곳곳에 연고를 바른 후 잠이 들었다. 여관방은 의외로 아늑했다.
푹 쉴 수 있었던 여관
6장. 골인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재개했다. 무릎 통증은 여전했지만 빨리 가든 늦게 가든 바퀴가 구를 때마다 목적지가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느긋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오르막길은 역시나 계속되었는데, 그 못지않게 내리막길도 계속되기에 과히 나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가장 즐거운 순간이 바람을 맞으며 활강하는 것인데, 사실 그건 오르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힘든 시간이 있으니 행복한 시간이 있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며 슬슬 익숙한 지명들이 눈에 들어오는 고향 대구로 진입했고, 대구를 관통하여 영천집에 다가갈수록 나와 공유하는 기억의 농도가 진한 지명들이 차례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206km를 13시간 40분을 달렸더니 집이 보였다. 감동이 넘쳐흐른 탓인지 아님 육체의 피로가 갑작스레 진하게 다가와서인지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한참을 멍해 있었다.
골인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의 기록
7장. 내 청춘의 알리바이
이렇게 길게 글을 썼지만 사실 별거 아니었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국토종주까지 하는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코웃음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건 어디 자랑할 게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준비한 '내 청춘의 알리바이'이니까.
나중에 나이 들어 '야, 문성 너 이십대 그 젊은 날을 뭐하고 보낸 거냐"라고 자문할 때 내가 그동안 했던 많은 노력들, 남들은 동의 안 하지만 스스로는 특별하다 여긴 여러 허튼 짓들, 그로 인해 이룰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성취 중 하나로 이 여행을 자신 있게 언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하나의 자양분이 되어 내 뿌리에 뿌려지고 내 줄기에 스며들 테니, 나는 여전히 별 것 없는 놈이지만 내 안의 나는 이 여행으로 한 뼘 더 자랐으리라 믿는다.
"문성은 근성이다"
이번 여행의 주제였다.
내 핸드폰 바탕화면
[2007년 10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