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이 글을 쓴 지 딱 6년 뒤인 2023년 12월, 저는 완전히 새로운 업무인 마케팅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저의 이 등산은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요?
회사마다 인재를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많은 회사에서는 직원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다양한 경험을 시키곤 한다.
마케팅으로 입사했어도 재무도 시켰다가 영업에도 보냈다가 인사 업무도 시키면서 회사의 중요한 파트를 두루 섭렵하게 한 다음, 그 모든 관문을 잘 통과한 직원들에게만 '왕관'을 수여하며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프로세스다. 한 직무에서 수십 년 한 길만 판 경우보다 회사의 요직을 두루 경험해본 사람이 경영진으로서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이런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 개개인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라. 여러 업무를 겪으며 경험치를 축적해 가던 어떤 직원이 한 번의 결정적 실수나 본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환경적인 문제로, 혹은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긴 호흡으로 끌어주던 상사가 회사를 관둬 버려 상기한 이상적인 커리어의 경로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섯 개의 직무를 잘 거친 후 도달한 여섯 번째 직무와 너무 안 맞아 거기서 안타깝게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마치 등산 도중에 일정을 접어야 하는 사람처럼 굉장히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상방이 막혀 더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전문성이 다져지지 않은 어중간한 경력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나이도 많이 들었고, 이래저래 업무를 바꿔오다 보니 실무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괴로움만 곱씹다가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회사는 연말 조직 변경 시즌으로 바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지금 자리에 머물게 되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는 이들의 발령 명단을 보면 축하 못지 않게 걱정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회사는 회사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다.
회사의 합리적인 결정이 항상 개인의 합리적인 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뭔가 논거가 미약해 보이는 스스로의 합리성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는 회사의 합리성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 길로 가라 하시는 회사의 지엄한 지시를 일개 회사원이 딱 잘라 거절하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2017년 12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