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평균의 함정

오래 전 대학 졸업 당시 합격한 회사들 중 왜 굳이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갔냐고 누가 물어보면, '정직하고 투명한 회사에 다니고 싶어서', 혹은 입사 당시 유명했던 ‘사장님의 카리스마에 끌려서’ 등 살짝 포장된 얘기를 꺼내곤 했지만, 아주 솔직한 이유는 "사람답게 일하고 싶어서"였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직원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을 학교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하찮게 대하지도 않을 것 같았고, 시대가 아무리 빨리 변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화장지, 기저귀, 생리대를 계속 쓸 테니 백척간두에 선 양 하루하루의 실적으로 직원들을 채찍질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회사에서 보낸 긴 시간을 돌아보면, 입사를 결정할 때의 내 생각은 틀림이 없었다. 내가 6년 넘게 일하고 온 여러 나라의 조직과 비교해서도 이 회사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감정적으로 남들 괴롭히지 아니하며 한국의 유명 대기업들보다 평균 근무강도도 낮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이 바닥으로 내리꽂고 있지만 여전히 준수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고, 아무리 코로나나 경기불황이 와도 사람들은 화장지, 기저귀, 생리대를 쓰고 있으니 내가 은퇴할 때까지 이 회사가 무너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의 이야기. 내 개인에 적용하면 완전히 다른 스토리가 된다.
회사의 평균 워크로드는 높지 않다고 해도 나는 이번 주 3일 내내 새벽 한 시 넘어서까지 일했고,
회사 사람들은 다들 괜찮다지만 내 성과와 역량 수준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나는, 스스로에게 막말을 하며 자신을 독하게 갈구고 있다.
회사는 위생용품이라는 토대 때문에 쉬이 망하진 않겠지만 그게 내 개인의 재무 상황이나 커리어패스가 망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은 정규분포를 그리기 마련이고, 평균이 어디에 위치해 있든 간에 평균과 동떨어져 전혀 다른 양태를 보이는 일부가 늘 존재한다. 최근 와서 깨달은 거지만 나는 한참 전부터 이 회사의 정규분포, 그 끝단에서 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집단을 해석함에 있어 항상 평균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크게는 국가에서 작게는 또래 모임에 이르기까지. 평균은 집단을 잘 대변하는 좋은 지표이기는 하나 집단 구성원의 모두가 그 평균 위에 발을 겹치고 서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평균은 개인에 영향을 미칠지언정 개인을 결정하진 않는다.
의도치 않게 역외권에 머물고 있는 나는, 그렇다고 계속 투덜거릴 수는 없다. 다음 주 월요일에 발표할 자료를 만들어야 하거든. 입을 비쭉거리며, 파워포인트를 연다.
[2021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