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나를 찾는 여행, 문성 찾기

스마트폰도, 지도앱도 없던 시절, 프린팅한 지도를 움켜쥐고 문성을 찾아 나섰던 그 때의 풋풋함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찍은 사진 몇몇을 아쉽게도 잃어버렸으나, 본문을 고치지 않고 사진의 공간은 그대로 비워둡니다. 언젠가는 다시 찾을 수 있겠지요.
혼자만의 여행은 외로움을 전제로 한다. 오고 가는 도중 부딪치게 되는 갖은 어려움과 혼자 알기에는 아깝기 그지 없는 즐거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을 홀로 감내하고 간직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선 혼자라 더 편할 수도 있겠지만 바탕에 드리운 고독감으로 인해 이런 류의 여행은 필연코 단조풍의 무거운 선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일은 본질에 앞서 어떻게 말해지는가가 더 중요한 법,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수다한 사람들은 혼자만의 여행에 이른바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상당히 멋진 수식을 더하기 시작했다.
비록 혈혈단신으로 다녀오는 외로운 길이지만 종내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 혹은 내가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나는 행보이기에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으며 여정 끝에선 더 채워진 자신을 보게 된다는 낭만적인 새김이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혼자 여행가다니 너 왕따구나'투의 구박이 아닌 '혼자 여행가다너 너 멋지다'의 감탄을 받아낼 수 있는 치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혼자만의 여행=나를 찾는 여행'에의 등식은 반증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글쎄다. 여행은 물론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되고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지만 이 결과물들을 '나를 찾음'에 매개할 구심점은 명쾌히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인생이 바뀌고 삶의 가치관이 뒤집어지고 새로운 운명을 직면하게 된다면야 자랑스레 '나를 찾았다'라 피집불굴할 수 있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터, 나 역시 두 번의 여행을 혼자 떠나기도 하였으나 고백컨대 기대했던 격렬한 변화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 여행은 그냥 여행일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싱숭생숭히 얼마 있지도 않은 역마살을 짓눌러가던 내게 나의 고까운 성질머리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하나 해왔다. 어차피 여행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것은 세간이 붙여놓은 수식에 불과하고 실제로 이를 경험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할테니 나는 아예 실제로 존재하는 나 - 그러니까 '문성'- 를 진짜로 찾아버리자고.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찾는 여행이지 않겠냐고 말이다.
이것이 귀중한 개인 휴가를 써가며 단행한 문성의, 문성을 찾는 여행, 이름하여 '문성찾기'의 시작이다.
'철저히 대중교통 수단을 의존하되 택시는 타지 않는다'와 같은 몇 가지 원칙 하에 자연스럽게 내 주요 생활터전인 3개 도시 대구-대전-서울을 그 대상으로 하게 되었으며 태생적 방향치의 한계와 제대로 업데이트 되지 않은 지도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십수번의 쓰디쓴 헛걸음을 하기도 하였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수많은 문성을 찾아 내기에 성공하고 말았다. 아래는 그 성공담이다.
대구 중심가. 늘 다니는 길에 위치한 문성서화사.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아왔으며 문성찾기의 스타팅 포인트 되겠다.
청계천변을 노닐다가 발견! 유일한 야간사진 되겠다. 당시에는 청계천을 건너 방문할 생각을 미처 못했었는데 내부가 궁금하긴 하다. 중고서적 전문일텐데 말이다.
[사진 유실]
용산 근처에서 잡아낸 문성. 文星으로 되어 있는데 내 이름은 文成. 예전에 나더라 문star라 부르던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제대로 말하자면 난 문Success가 맞다.
서울역 뒤쪽에 위치한 여관. 간판은 최근에 바꿨는지 그나마 깨끗한데 건물은 엄청 후줄그레해서 그다지 머물고 싶지는 않다. 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보라. 엄청 좁은 골목길이잖은가. 물론 궁금하기는 하다. 전화하면 '예 문성여관입니다~' 그러겠지? 왠지 민망하구만.
문성찾기 중 가장 실패를 많이 한 것이 '식당', '회관'류다. 지도에 나와있는대로 찾아가도 망해서 없어진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평균 500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는다고 했던가? 역시 요식업은 힘들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지라 아쉽게도 굴요리의 진수를 맛보진 못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문성마트. 문성찾기를 통해 다양한 글씨체의 내 이름을 보게 된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밑에 나와있듯 이건 마트를 빙자한 문구점이었다.
학교 홈페이지 주소 하나 믿고 찾아간 문성초등학교. 마침 운동회 중이라 들어가서 한참 보고 나왔다. 부채춤 추고 매스게임 하는 모습은 나 어릴 때와 다를 바 없었으니 애들은 대대로 고생이다.
문성은 꿈도 가꾸고 희망도 가꿔야 합니다. 바쁘네요.
장구와 오카리나까지 아우르는 대단한 문성음악학원. 원장 선생님이 장구를 치며 오카리나를 부는 모습을 일순 상상해버렸다.
문성그룹은 세탁소까지 그 지경을 넓혔다. 우리나라에 세탁소가 중국집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있다던데 과연 맞는 말일까? 세탁소 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다.
가장 힘들게 찾은 녀석 중 하나. 텔레콤이라고 하기에 제법 크고 잘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한참은 구석진 곳에 아주 조그맣게 위치해있었다. 게다가 망했는지 문은 닫겨 있었고. 입지가 별로라 그렇다. 상호는 참 좋은데 말야.
온누리약국체인인데 왜 이름은 문성으로 지은 것일까. 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었는데 약사가 무시무시하게 생긴 아저씨라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분 이름이 문성일 수도 있겠다.
대구의 유명병원. 한방 병원까지 겸업 중이고 야간진료까지 한다. 지역사회에 큰 힘이 될 듯. 이만하면 대구는 문성의 도시라 해도 물론 과언이다.
건물 전체는 물론 아니고 건물 위층에 위치한 작은 교회같은데 입구는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세운상가 뒤쪽 골목길을 구비구비 돌아 찾아냈다. 새벽 여섯시쯤 가서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흐린 하늘에 어두운 골목길이 제법 으스스했다.
[사진 유실]
이 다음 찾기는 연거푸 네번이나 실패했다. 지도대로 찾아갔는데 이미 이사를 했거나 폐업을 해서 간판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 컴퓨터학원이 어디 남았겠어. 망했겠지 하며 반신반의 끝에 찾아갔는데 떡하니 성업중이라 반가웠다. 물론 '영재전문' 어쩌구저쩌구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치고 있더라.
[사진 유실]
중앙대 앞 문성한의원. 마침 체력이 달랑달랑했고 너무 많이 걸은 탓에 양쪽 무릎인대가 모두 늘어난 듯 아파왔기에 박차고 들어가 추나요법의 손길에 기대고 싶은 마음 간절했었다.
[사진 유실]
김천에서 찾은 문성중학교도 있었다.
두번째 문성교회. 분명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교회일 것이야. (근거없음)
[사진 유실]
대전에서의 문성찾기보다 서울에서의 문성찾기가 쉽고 성과도 좋았는데 여러 업체가 몰려있던 문성지구의 역할이 컸다. 경찰했으면 문성지구대장 이런거 목표로 했을텐데 아쉬웁다.
[사진 유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 신기하게도 내 이름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곧잘 눈에 뜨인다. 역시 너무도 많이 보고 들은 이름이라 그럴 것이다.
서울문성초등학교. 초등학생들이 죄다 집에 간 이후라서 그런지 대전문성초등학교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사진 유실]
가정집 1층을 뚫어서 만든듯한 문성문구사. 아마 문구사 안 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같은게 있지 않을까.
[사진 유실]
문성지구와 문성터널 사이 위치한 문성골길. Valley인가 骨인가 설마 腦는 아닐 것 같은데... 아니 것보다 영어가 나랑 완전 다르다. MUN SEOUNG 이라니 이건 읽고 쓰기도 힘들고 외국인들도 전혀 못 알아들을테다. MOON SUNG, 얼마나 깔끔하고 심플하며 가독성 가청성 높으냐고 내 홈피도 www.munseoung.com 이었으면 지금보다도 더 썰렁했을테야.
[사진 유실]
차타고 가다가 발견하고는 얼른 사진꺼내 찍었다. 두 개의 간판의 이질감으로 볼 때 나름 영업점 두 배 확장에 성공한 케이스로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2호점(혹은 본점)은 문을 닫고 있었다.
[사진 유실]
문성문구사를 많이 찾기도 했고 몇 번 실패하기도 했는데 이런 업종에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한가보다. 잠깐, 문성문구는 거꾸로 읽으면 구문성문. 가운데 두 글자는 여전히 문성이다.
전자제어차량 엔진수리를 전문으로하는 대단한 문성공업사 아쉽게도 저는 아직 차가 없답니다.
[사진 유실]
성의 ㅇ자가 좀 빗나가있어서 보기 이쁘지 않다. 문성이 아니라 문서ㅇ 인데 문성찾기에 포함해야 되나 조금 고민하긴 했다.
[사진 유실]
문성터널 얘기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들었었다. 그냥 앞에 휙 지나가는 버스에 문성터널 적힌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고. 결국 10년만에 찾아갔구만. 문성이름을 붙인 초대형 구조물 되겠다.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려나.
[사진 유실]
문성의 이름을 한 초대형 구조물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워킹으로 가볍게 관통해주었다. (매캐한 공기로 가득찬) 시원한 바람과 벽에 사정없이 부딪혀 돌아오는 자동차의 굉음이 청각과 촉각을 매우 괴롭히며 나를 뜨겁게 환영해주었다.
[사진 유실]
문성빌딩! 이 빌딩은 이름에 걸맞게 지상 25층, 지하 4층의 대형건물로 아웃백과 캘리포니아 와우 휘트니스 클럽이 입점예정입니다!! ... 라면 좋겠지만 그냥 작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살짝 아쉬웠다.
[사진 유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 아니 여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인데??
...하지만 문선생패션스토아였다.
[사진 유실]
문성중학교. 이상한 곳이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것을 넘어 사람의 흔적조차 안 보였다. 이거 학교 맞어? 아니면, 중학교의 중이 스님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럼 여기는 스님을 양성하는 조계종 산하의 미션스쿨일지도. 지금은 3교시 법문묵상시간이다.
[사진 유실]
문성이름 붙은 것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게 별로 없었던듯하다. 조금 오래되고 낡은 듯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보면, 문성의 전성기는 약 80년대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로 인해 곧 다시 도래할 예정이다) 내 이름이 붙은 아파트라 참 좋긴한데 그다지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사진 유실]
또 문성문구. 구문성문. 대체 몇 개째냐? 실패한 것까지 다 찾았으면 10개는 되었겠다.
[사진 유실]
삼성 본사 뒤쪽에 위치한 문성칼라복사. 화려한 테크닉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반가운 마음에 대뜸 들어가서 1만원 인출했다. 한 20만원 뽑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돈도 없고 왠지 문성이 문성한테서 돈을 뽑아내는 현실이 서글퍼 소액으로 만족했다. ATM도 날 알아보는지 수수료를 공짜로 해주었다. 여기 꼭 부흥하시길.
[사진 유실]
이거 찾느라 고생한 것 생각하면 허리가 휘둘둘. 가정집 안에 간판만 붙여 놓았는데 이 가정집이 또 나름 대문까지 달고 있어 찾기가 매우 고달팠다. 동네 세네 바퀴 돌고 포기하려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네할머니 붙잡고 물어봤다니까. 그 얘기 듣고도 찾는데 한참이나 걸린 것은 역시 내가 방향치이기 때문.
난 아직도 전업사가 정확히 뭐하는데인지 모르겠다. 전기관련업무를 한다는 것이겠지?
버스 정류장에서 한 30~40분 걸어서 겨우 찾은 문성이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갈 생각에 눈물이 겨워 앞에 서서 사진만 계속 찍어대었다.
음식메뉴 많은 집 치고 맛있는데 없다던데 그래서 평일에도 저리 문 닫고 있는 것일까. 상호는 참 번창할 네이밍인데 말야. 식단을 단촐하게 가져갑시다. 문성식당님.
무서운 문성중학교 앞에 위치한 문성슈퍼. 슈퍼도 슈퍼지만 뒤에 있는 문성중학교를 다시 보니 다시 오싹해진다. 사진 찍을 때는 문성중학교가 뒤에 보이지 않게 했는데 혹시 이 녀석 따라온건가? 으으으윽.
[사진 유실]
문성찾기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 대상감입니다. 문성을 직접 찾아보세요.
문성찾기는 애시당초 재미를 표방한 일종의 놀이형 여행로 설정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생 때문에 더 많은 생각할 거리와 경험들을 거머쥘 수 있었으며, 덕분에 이십대 말미에 편한 휴식, 화려한 해외여행을 뿌리치고 나선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문성을 찾는 여행을 통해, 기대하지 않았던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까지 경험한 것은 아닐까.
[2009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