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썼을 당시 한 해 32만이 넘던 한국의 혼인건수는 이제 20만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아이 학원비를 벌려고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많이 나왔었는데, 요즘에는 그리 살 바에는 결혼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겠다는 결정을 하는 듯 합니다.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고전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산업사회의 대두로 말미암은 노동자 계급의 상대적 부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결혼을 가능한 한 늦게 하고 자식도 적게 가지는 것을 제안했다.
먹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한정된 상황에서 굳이 입을 늘려 부모도 힘들고 자식도 힘든 상태를 초래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국가의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현대사회의 거시적 관점에서는 달가울 리 없겠지만 여전히 이 주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 결혼을 하라고 한다. 그것도 빨리.
모두 자식을 낳으라고 한다. 그것도 많이.
하지만 그로 인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힘든 삶을 영위해야 한다면 그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일까.
주위를 보면, 혼자 사는 30대 남성의 경우 2013년 기준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벌면 어떻게든 살아갈 만하다. 흥청망청 유흥에 빠지거나 사치를 하고, 혹은 무리해서 집을 사느라 큰 대출을 받거나 가족이 심각한 병을 앓지 않는 이상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소득의 사람들이 수입은 그대로인 채로 가족을 더하면, 그때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당장 두 명이서 살 집도 마련해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동일한 돈을 셋이서 나눠서 써야 한다. 아이가 둘이라면 넷이서 나눠 쓰는 거겠지.
아이 때문에, 혼자라면 필요없었을 큰 차도 구매를 해야 하고 혼자라면 절대 사지 않을 어린이 동화책이나 장난감,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을 어린이 놀이시설의 비용도 모두 동일한 수입에서 감당해야 한다.
교육비는 어떤가. 각종 학원에 영어유치원이라도 보낸다면 아이가 쓰는 돈은 부모가 쓰는 돈을 아득히 초과하게 된다.
당연히 부부는 결혼 전 구가하던 생활 수준을 영위할 수 없고 크고 작은 궁핍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 결핍이 작지 않은 경우 필연코 불거질 수밖에 없는 고통을 배우자에게 아플 정도로 쏘아댈 것이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부모에게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
“내 친구들 다 스마트폰 쓰는데 나는 왜 안 사줘?!”
누구나 결혼은 하고 자식은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근무해 본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돈 때문에 매일 부부싸움을 하며 서로를 미워하는 부부는, 과연 결혼을 해야 했을까.
자식 학원비를 내기 위해 퇴근 후 대리운전을 하는 아빠나 몰래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엄마들은, 과연 자식을 낳았어야 했을까.
돌아보면, 어려서부터 우리가 반드시 해야 된다고 배웠던 많은 인생의 명제들은 무조건 참이 아니라, 특정 조건(IF)하에서만 성립하는 것이었다.
행복할 자신이 있다면, 결혼해라.
소중한 자기 인생의 가치를 양보는 하되 포기는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아이를 낳아라.
이런 식으로 조건이 명제 앞에 붙어야 한다. 학교도, 군대도, 우정도, 투자에 대한 명제도 다 마찬가지다.
나는 미루고 미룬 결혼을 올해 할 것이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이다.
돈도 없고 전망도 불투명했던 이십 대 때 결혼을 했었더라면 나 자신도 그렇고 가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을까, 그걸 생각하면 그간 노총각 딱지를 붙이고 살아온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맞닥뜨릴 인생의 다른 과제에서도 마찬가지의 자세를 버리지 않으려 한다.
어떤 딱지가 내 이마에 붙든지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모든 명제에 선행한다.
그런 자세로 살아갈 것이다.
[2013년 2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