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유턴할 용기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길을 돌아가기로 결정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생 때의 어느 여름날,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스마트폰은커녕 삐삐조차 없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심각한 방향치였던 나는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던 상점에 심부름을 갔다가 건물을 나오면서 무심코 엉뚱한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모르는 길, 익숙하지 않은 길이었다. 걸을수록 낯선 풍경만 이어졌다. 그런데도 주위에 묻기가 창피해서인지, 지금 길이 분명 맞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 때문인지, 아니면 돌아가 봤자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인지, 난 방향을 고치지 않은 채 앞으로 계속 걸었다. 언젠가 익숙한 풍경이 나타날 거라는 바람으로.
그렇게 내리걸은 게 무려 세 시간이었다. 아무리 가도 집은 나오지 않았다. 방향이 틀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리도 점점 아파오고 부모님께 혼날까 걱정도 들기 시작하여, 겨우 용기를 내 길을 걷던 인상 좋은 아주머니에게 20원을 빌려 공중전화로 집에 연락을 했다. 안 그래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으로 유괴와 인신매매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던 시절, 전화기 앞에서 노심초사 기다리셨던 어머니는 내가 애써 묘사한 장소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돌아가면서 확인해 보니 역시 내가 갔던 길은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잘못된 길은 아무리 열심히 가도, 옳은 길로 바뀌지 않는다. 예외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린 국민학생 때처럼, 잘못 들어서서 그저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간 길 끝에 좋은 결과가 기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마다 좀처럼 유턴을 못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십 년 전, 잘못된 길임을 알고도 돌아서지 못했던 내 모습에 그 해답이 있었다.
첫째, 내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운전하면서 길을 잃어버리고 오래 헤매는 사람들은 오히려 차를 잘 몰거나 길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자기의 감이나 기억이 맞을 거라고 확신하다가 더욱더 깊은 미로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운전하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지는데도 이 길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잠시 낯설게 느낄 뿐이지, 결국은 내가 맞을 거라는 고집을 버리지 못했다.
한때 내가 몸 담은 어떤 곳이 가라앉는 배처럼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는데, 갑판에 넘쳐흐르는 물을 잠시 파도가 튄 것이라 치부하며 그저 버텼다. 언젠간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그 결과는 슬프게도, 배와 함께 가라앉는 나 자신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둘째,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을 겁냈다.
길을 잃어버린 날, 한 10분 정도만 걷다가 이건 아니다 생각하고 공중전화비를 빌렸다면 그날의 일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해프닝으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 20원을 빌리는 게 그렇게나 어려웠다. 나는 너무 어렸고 어른들은 무서웠다. 돈 빌려달라고 했다가 혼나거나 면박당할까 봐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결국은 마주쳐야 할 불편한 순간을 계속 뒤로 미루느라 시간과 노력만 더 허비한 것이다.
나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살아오면서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까 이제라도 바로잡겠다”라고 말하기를 너무 어려워했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내가 뭐라고 하든 알아서 잘하라고 응원해 줬을 것이고, 아내는 내 등을 힘껏 밀어줬을 것이다. 그 외에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날 비웃고 흉 보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불편함과 부끄러움, 몇 마디 뒷말과 눈총이 두려워서 쉽게 돌이키지 못한 것이다.
셋째, 이제껏 걸어온 것이 아까웠다.
길을 잃어버린 그날,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만큼 걸었을 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고, 조금만 더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모두 빗나간 희망이었다.
입학 첫 학기를 마친 후 전공이 맞지 않음을 깨달은 대학생이 다시 수능 참고서를 펴고 입시생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냐 지금 돌아가긴 너무 늦었어. 분명 이 안에 답이 있을 거야” 하며 헤매거나 버티면 오히려 더 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취업이나 연애, 결혼도 마찬가지다. 투자에서도 구조적인 이슈로 크게 하락한 주식을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된다. 의사결정에서 매몰비용은 무시해야 한다.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달았다면 빠르게 고민을 마치고 핸들을 돌려야 한다. 내 주위에도 늦었다 싶은 시기에 유턴을 함으로써 삶을 바로잡은 사람이 많다. 대학 재학 도중, 심지어 졸업 후 다시 수능을 치고 진로를 수정한 후 지금은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친구들도 여럿 있고, 회사 동료 중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어 일찌감치 방향을 틀고 업무를 바꾸거나 이직하여 잘된 경우도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내가 “저 사람 정말 멋있다”라고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정답을 고른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고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물론 인생은 특정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 전부인 운동 경기는 아니다. 잘못된 길이라도 그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참 많이도 했지만 그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지금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잘못된 길에서 넘어지고 좌절하면서 더 나은 내가 되었다. 지나고 나니 길을 잘못 든 것마저 인생에서 감사히 여길 일이었다.
다만 내가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의 길 위에서, 적절한 시기에 핸들을 꺾을 수 있었더라면 실패를 좀 덜 경험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 길'을 세 시간이나 걸을 필요는 없었다.
인생이라는 운전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유턴이다. 인생에서의 유턴은 잘못된 길로 걸어왔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길을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난 이 용기를 조금 더 일찍 배웠어야 했다.
[2025년 7월 30일]